스포츠계 '40대 반란'…최용수·이호준·이승엽

입력 2016-04-19 09:40:03

국내 프로스포츠계에서 40대 선수들의 활약상이 주목받고 있다. 장강 뒷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낸다는 세상 이치를 비웃듯 이들은 20대 못지않은 체력과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스포츠 나이로는 '환갑'에 해당한다. 40대의 반격은 20대 위주의 큰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화제와 볼거리를 낳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우리 사회 중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40대의 화려한 귀환을 화끈하게 알린 주인공은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최용수(44)다.

이달 16일 고향인 충남 당진시 호서고 체육관에서 열린 13년 만의 링 복귀전에서 8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14살이나 어린 나카노 카즈야(30·일본)를 흠씬 두들겨 두 차례나 다운을 빼앗은 끝에 거머쥔 승리여서 감동이 더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는 찬사도 받았다. 최용수는 사우스포인 나카노에게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계속해서 큰 펀치를 허용했다. 그의 복귀를 환영하는 커다란 걸개막을 들고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중년 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글러브를 다시 꼈다는 최용수의 공언은 현실이 됐다. 수많은 펀치를 얻어맞으면서도 무서운 근성과 집념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4라운드 중반, 회심의 한 방이 적중하며 나가노를 그로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5라운드와 7라운드에서 한 차례씩 다운을 빼앗은 끝에 8라운드에서 경기를 끝냈다.

노장의 감동 투혼에 경기장은 최용수를 외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최용수는 경기 후 "나이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마음먹고, 어떤 정신상태로 운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음에는 더 강한 상대와 붙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야구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만끽하는 선수들이 있다. NC 다이노스의 주포 이호준(40)은 40대 기수론의 선두 주자다. 올해 불혹의 경계선에 도달한 그의 활약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하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308(26타수 8안타)에 1홈런 7타점이다. 이달 15일 롯데 자이언츠와 치른 3연전 1차전에서 5회 말 대타로 나와 2타점 쐐기 적시타를 터트렸다. 3차전인 17일에는 1회 말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고 개인 통산 3천 루타를 꽉 채웠다. KBO리그 역대 8번째였다.

이호준보다 많은 나이에 이 기록을 밟은 선수는 없다. 최고령 3천 루타. 40세 2개월 9일 만에 신기록을 달성했다. 종전 이 부문 1위였던 2012년 박재홍(당시 SK 와이번스·39세 29일)을 넘어선 성적이다.

지난해 6월 18일에는 최고령 300홈런 고지까지 밟았다. 프로 20시즌째를 보내면서 기록을 하나씩 갈아치우는 셈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숨은 힘 역시 40대에서 나온다. 주전 경쟁이 치열하고 두터운 전력을 자랑하는 삼성이지만 베테랑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라이언킹' 이승엽(40)이 사자군단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율 0.292(48타수 14안타) 2홈런 11타점으로 타선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올 시즌 홈런 2개를 쌓아올린 이승엽은 23홈런만 추가하면 한·일 통산 600홈런을 달성한다. 2014년 32개, 지난해 26개를 때려낸 이승엽의 최근 홈런 페이스라면 올해 대기록을 충분히 기대해볼 만하다.

한화 이글스의 필승 불펜 박정진(40)·포수 조인성(41)·내야수 권용관(40), KIA 타이거즈의 최영필(42) 등도 여전히 그라운드에 남아 투지를 불태운다.

LG 트윈스의 상징적인 타자 이병규(42·등번호 9번), 걸출한 입담의 홍성흔(39·두산 베어스)은 올 시즌 출전 기록이 없지만 2군에서 한참 어린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1군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야구보다 선수 생명이 훨씬 짧은 편인 배구에서는 현대캐피탈의 리베로이자 플레잉코치인 여오현(38)이 눈길을 끈다. 지난 시즌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며 현대캐피탈의 18연승 대기록 작성에 큰 힘을 보탰다.

한국 스키의 전설 허승욱(44)은 1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허승욱은 지난 2월 20일 일본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레이스 슈퍼대회전에서 2위에 오르며 이변을 연출했다.

허승욱은 10년 전인 2006년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로 변신했지만, 현역 열망을 지울 수 없었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부터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까지 올림픽에 5회 출전한 바 있다. 허승욱은 "2016~2017시즌까지 FIS 포인트 관리를 잘한다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소녀들의 마음을 훔쳤던 꽃미남 축구스타 이동국(37·전북 현대)도 어느덧 불혹을 앞둔 노장이 됐지만 가치와 능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통산 183골 66도움을 기록해 249개의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다. 득점이나 도움에서 하나만 더 추가하면 K리그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기록을 만든다.

'사랑이 아빠' 추성훈(41)은 불꽃 같은 투혼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 케이스다.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서울' 웰터급 경기에서 알베르토 미나(33·브라질)에게 1-2로 판정패했지만, 투혼 넘치는 경기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추성훈은 경기 후 "2라운드에서 패배 직전까지 몰려 이제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팬들의 응원 목소리 덕에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실망스러운 경기력에다 구설에 올랐던 최홍만(36)은 마침내 케이지에서 멋진 승리를 보여줬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로드 FC 경기에서 중국의 아오르꺼러(21)에게 1라운드 KO승을 거두고 마음고생을 털어낸 것이다.

온갖 좌절과 실패를 딛고 이긴 것이라 이번 승리는 열정이 식어가는 이 땅의 중년들에게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라는 평가가 스포츠계 안팎에서 나온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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