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아직도 배가 고프다

입력 2016-04-18 21:02:59

먼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좀 씹어야겠다. 정계 은퇴 후 저술가'정치평론가로 잘나가는 분을 무슨 이유로 비판하는지 의문을 갖겠지만, 대구 시민의 자존심에 적잖은 생채기를 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고향에 남을 것이라고 선언해 놓고는 야반도주하듯 사라진 인사다. 그때만 해도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대로 정말 '싸가지 없는 진보'의 전형이었다.

8년 전 대구은행 네거리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젊은 '유빠'들이 도로에 쭉 늘어서 지지를 호소하던 기억이 난다. 유 전 장관의 해프닝은 낙선 이후에 벌어졌다. 그는 '고향에 남아 있겠다'는 믿기 힘든 선언을 했다. 경북대에 강의를 하러 다니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소문도 없이 '호적'을 파서 서울로 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2년 뒤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낙선하는 것을 보고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다. 국민이 무슨 바보인가. '얍삽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정치인을 당선시킬 리가 없다.

어떤 분은 그의 얼굴이 TV에 나오면 곧바로 채널을 돌린다고 하는데, 배신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재승박덕(才勝薄德'재주는 많으나 덕이 부족함)의 표본이니만큼 대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말고 뛰어난 저술가로 남는 것이 맞았는지 모른다.

유 전 장관처럼 선거 때만 되면 '고향 까마귀'를 외치며 갑자기 찾아오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중에는 이른바 '명망가'도 많았다. 낙선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것은 물론이고, 선거를 도와준 분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은 '파렴치한(漢)'도 있었다. 그분들에게 고향이나 출신지역은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물일 뿐이다.

이런 분들의 대척점에는 수성갑에서 압승을 거둔 김부겸 당선자가 있다. 김 당선자는 유 전 장관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그다지 재주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솔하고 순박하다. 술을 마시면 목소리를 높여 "지역 언론이 저를 밀어줘야죠"라고 꾸밈없이 말한다. 5년간 대구에서 바닥을 다지며 '진정한 대구사람'으로 인정받았기에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대구 유권자들도 푸근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준 후보에게는 주저 없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2014년 재'보선에서 당선한 뒤 서울과 순천을 오가는데 비행기를 241번이나 탔다고 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주민들을 대하는데, 후보의 소속정당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찌 보면 은근과 끈기가 정치가의 기본 자질 중 하나인데 우리 주위에 그런 정치인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혼자 잘난 척하거나, 립서비스만 하다가 뒤로는 자기 실속만 챙기고, 재'3선 의원이라고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 거들먹거리는 꼴을 숱하게 봤다. 이런 분들이 국가를 위해, 고향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나 다름없다.

이번 총선에서 대구 시민은 변화를 선택했다고 한다. 더민주 1명, 무소속 3명을 당선시켰기 때문이겠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구'경북 당선자 가운데 유권자를 이용 대상이나 자신의 출세 도구 정도로 여기는 인간형이 여전히 많다. 이런 분들은 특정 정당이 독식하면서 몸에 밴 습관을 지우지 못하고 '웰빙'하며 4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독식 구도에 더 큰 균열을 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는 느낌이 있다.

지금부터 지역 의원들을 더 채찍질하고 꾸중해야 한다. 광주'전남은 지역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국회의원은 설 땅이 없을 정도로 냉정하다. 대구'경북도 그런 풍토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치권을 혁신해야 한다. 대구'경북은 더 바뀌어야 미래가 있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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