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4월 5일 식목일

입력 2016-04-03 21:32:52

해방 직후 우리나라 산의 50%는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사막 같은 산이 8%나 됐다. 김동인이 1933년 발표했던 소설 제목 '붉은 산'이 암시하듯 산은 오늘날과 같은 푸른색이 아니라 붉은색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일본은 이를 땔감을 쓰는 우리나라의 온돌문화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제의 산림 수탈의 피해가 훨씬 컸다. 일제는 한일병합 후 우리 삼림을 조직적으로 훼손했다. 1910년 한일병합 당시 7억㎥에 이르던 우리나라의 임목축적량은 1945년 해방 당시엔 2억1천200여㎥로 쪼그라들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목축적량이 3분의 1토막 난 것이다. 일제의 삼림 수탈은 해방 후 전국적인 조림사업을 필요하게 했다. 1946년 미군정청이 4월 5일 식목일을 정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막상 정하기만 했지 유명무실하던 식목일은 박정희 시대 본격적인 산림녹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빛을 발했다. 붉은 산은 푸른 산으로 바뀌었다.

'4월 5일 식목일'은 한민족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은 날이다. 이날은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1343년 음력 3월 10일을 양력으로 바꾼 날이다. 미군정청이 이날을 식목일로 정한 것은 1910년 4월 5일 조선조 마지막 임금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거행, 손수 밭을 갈고 직접 나무를 심었던 날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은 계절적으로 청명(淸明)을 전후해 나무 심기에 딱 좋은 때였다. 1940년대 대구의 식목일 평균기온은 8.9℃, 서울은 7.9도였다. 산림과학원은 나무 심기에 가장 좋은 온도로 평균 10도 이하 특히 6.5도를 지목하고 있다.

올해로 식목일 제정 만 70년을 맞았다. 이 기간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은 크게 올랐다. 대구의 최근 10년간 식목일 평균기온은 12.4도였다. 1940년대보다 3.5도 오른 것이다. 그러자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식목일 기온이 요즘은 3월 중순에 나타나니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식목의 의미는 희석됐다. 그보다는 경제수종으로의 육림이 더욱 절실하다. 식목은 한시적이지만 육림은 연중무휴다. 그렇다면 역사적 의미를 지닌 식목의 날 변경 논의보다는 연중 육림의 개념을 4월 5일 식목의 날에 일깨우는 것이 훨씬 의미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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