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배운다] (10·끝) 이스라엘에서 한국을 바라보다

입력 2016-03-29 22:30:02

93세 청년 대통령 시몬 페레스…결핍으로부터 발전…대학생 90% 창업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은 물론 전 세계 유대인은 이곳을 찾아 망국의 아픔을 되새기고 나라 사랑 정신을 다지고 있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은 물론 전 세계 유대인은 이곳을 찾아 망국의 아픔을 되새기고 나라 사랑 정신을 다지고 있다.
골란고원에서 갈릴리호수 가는 길에 만난 이스라엘과 시리아
골란고원에서 갈릴리호수 가는 길에 만난 이스라엘과 시리아'요르단 국경지대. 세 나라가 대치한 곳이어서 어느 곳보다 긴장감이 느껴진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캠퍼스에 설치된 놀이시설.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과학 원리를 이해시키려는 배려가 녹아들어 있다.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캠퍼스에 설치된 놀이시설.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과학 원리를 이해시키려는 배려가 녹아들어 있다.
세계적 금속절삭공구업체인 이스카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모습.
세계적 금속절삭공구업체인 이스카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모습.

열두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을 조명했다. 열흘 정도에 불과한 짧은 취재를 통해 이스라엘의 참모습을 파악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스라엘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가 모르는 이스라엘 이면(裏面)을 조금이나마 엿봤다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 배울 것도 적지 않지만, 이 시리즈의 목적은 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가진 장점들을 소개하는 데에 치중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이란 '프리즘'을 통해 대한민국을 되돌아보자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자는 것이다.

◆경제를 뒷받침하는 정치

이스라엘 국민이 존경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이다. 올해 93세인 그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에서 "민주주의란 각 개인이 '서로 다를 수 있는 동등한 권리'(the equal right to be different)를 지니는 것이다"고 연설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07~2014년 대통령을 지낸 페레스는 중동 문제에서 대표적인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외무장관 시절 라빈 총리와 함께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섰고, 팔레스타인 자치를 수용하는 '오슬로 협정'을 주도했다. 그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페레스가 존경받는 것은 장관, 총리, 대통령 등 수십 년에 걸쳐 중요한 자리를 역임하며 국가에 봉사한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퇴임 후 그의 행보를 보며 그에 대한 국민의 호감과 존경심이 배가됐다. 16㎡ 남짓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젊은 창업자들을 위한 멘토 역할을 했다. 투자자와 벤처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 자기 시간의 절반을 할애했다. 허허벌판에 세운 나라를 한평생 가꾸어왔고,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손자뻘 되는 젊은 창업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청년 대통령'에게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장관, 국회의원, 총리, 대통령 등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창업자 등 경제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열성적이다. 될성부른 창업자라고 판단되면 그 기업인 손을 잡고 미국으로 데려가 자신이 아는 인맥을 총동원, 투자를 받도록 하거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등지에 있는 유대인들은 물론 벤처 투자자들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에 앞다퉈 투자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99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우리 정치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국민 대다수 생각이다. 이스라엘처럼 정치가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가져오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판을 보면서 우리는 왜 페레스 같은 정치인을 갖지 못하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결핍, 발전의 원동력

2009~2010년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스라엘 항구 도시 하이파 앞바다에서 대규모 천연가스 유전이 발견됐다. 1948년 건국 이후 처음으로 발굴된 에너지 자원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아랍국들이 석유자원으로 '떵떵거리는' 것을 본 이스라엘로서는 국가적 경사(慶事)였다.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국민과 공장, 자동차에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요셉 클라프터 텔아비브대 총장의 반응은 달랐다. 지나치게 많은 천연가스는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게 독(毒)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발굴되면 땀 흘려 일하지 않고도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젊은이들의 도전정신과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처럼 두뇌 경쟁력을 토대로 한 지식경제를 이끌어가는 나라에서는 '불로소득'은 젊은이들의 열정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핍이 창조를 낳는다'는 조셉 캠벨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부족한 것, 즉 결핍(缺乏)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전을 이뤄낸 나라이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데다 강수량도 적은 자연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방울물주기 방법을 개발하고, 바닷물을 담수화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이 주어졌다면 이스라엘이 세계적 강국으로 올라서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국토와 인구가 적은 것도 오히려 이스라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이스라엘 기업들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벤처기업이 이스라엘에 많은 까닭도 글로벌을 지향한 덕분이다. 특히 2천년 이상 국가라는 존재가 결핍된 탓에 온갖 고초를 겪은 이스라엘 국민의 애국심이 투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같은 해에 건국한 대한민국도 전쟁과 가난, 그리고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땀을 흘려 선진국이 됐다. 배우지 못한 한(恨)을 풀기 위해 자식 교육에 집중했고, 못 가진 한을 풀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발전에 발벗고 나섰다. 그 덕분에 결핍은 이제 풍족이란 단어로 대체됐다. 풍족해졌지만 이것이 독이 돼 미래를 향한 도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후츠파' VS' 하면 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졸업 후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 등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기를 희망한다. 대학에 들어갈 때엔 의대, 치대 등을 선호하는 현상도 유별나다. 반면 이스라엘 대학생들은 80~90%가 창업에 나선다. 안정적인 직장의 이름 없는 일원이 되기보다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창업을 해 성공하는 비율이 극히 낮지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후츠파(뻔뻔함을 뜻하는 히브리어)를 '무기'로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북돋우는 요인이다.

이스라엘의 후츠파를 능가하는 도전 정신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외국에 가 배를 수주받고, 허허벌판에 세계적 제철소를 세운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적의 밑바탕엔 '하면 된다'는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3만달러 달성에 번번이 실패하고,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해법이 있겠지만 잠들어 있는 '하면 된다'는 DNA를 다시금 일깨우고 되찾는 게 중요하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 쟁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해 조(兆) 단위의 돈을 받고 글로벌 기업에 매각하는 이스라엘 젊은이들 이상의 성과를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거둘 수 있다. 혼자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미래에 대한 도전이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해결책의 하나란 것을 이스라엘은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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