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대구의 후예

입력 2016-03-25 20:17:27

계명대(학사)·경북대(석사)·계명대 대학원(언론학 박사) 졸업
계명대(학사)·경북대(석사)·계명대 대학원(언론학 박사) 졸업

"살려요. 당신은 의사로서 당신의 일을 해요. 죽여야 할 상황이 되면 죽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23일 방송된 9회에서 특전사 대위인 유시진(송중기)이 의료봉사단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하는 말이다. 악행을 일삼는 유시진의 옛 동료인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가 총에 맞아 쓰러지자 강모연이 치료 거부 의사를 비친다. 그를 살려두면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될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자 유시진이 치료를 권하며 하는 말이다.

'태양의 후예'는 해외 파병지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에다 주연배우, 특히 유시진의 새콤달콤한 대사가 더 진한 맛을 낸다. 분쟁 지역의 긴장감 또한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인다. 드라마에서 한국은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주연급으로 당당히 비친다.

회가 거듭될수록 드라마에 빠져드는 것은 그렇다 치고 세계의 평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미심쩍음은 살짝 남는다. 평화와 전쟁은 종이 앞뒷면과 같아서다. 평화와 전쟁의 정당성은 승자와 패자의 논리로 쉽게 갈린다. 강자의 행위는 평화를 지키는 선한 일로 약자의 행위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한 일로 낙인찍힌다. 군인의 역할이라고 다를까. 때때로 군인의 길은 평화의 길이 아니라 전쟁의 길이 된다. 드라마가 제국주의나 군국주의 냄새가 난다는 일각의 비평은 그래서 나온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명분과 실리를 한꺼번에 거머쥐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그걸 아는 이 드라마는 실리와 명분을 적절히 섞어 잘 빠져나간다. 파병지에서의 군인과 의사는 생명에 한해서는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다. 그래서 유시진과 강모연의 눈길 끄는 사랑 뒤편으로 애국 이야기 따위의 양념이 필요한지 모른다. 거기에는 날아가는 헬리콥터에 전원이 한 줄로 서서 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로 끝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드라마로 '태양의 후예'를 언급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분쟁 지역에서 제 일을 다 하는 젊은이들이 마음에 쏙 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철거됐던 '태양의 후예' 세트장도 복원할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태양의 후예'라는 이름대로 드라마 세트장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 애국심 고취 같은 이미지를 덧입히려는 억지만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눈을 돌려 다르게 바라보면 '태양의 후예'에 묻어 나오는 애국심은 관전자가 입맛에 맞춘 느낌이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현장에서 국가 경제를 위해 생존자보다 서류가 중요하다며 사무실을 뚫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유시진의 대사는 단적인 예다. 과거의 잣대로 애국을 맞추면 꽤나 답답한 상황이 생긴다. 후보 등록은 끝났지만 텃밭 대구에서 뒤엉켜버린 집권 여당의 4'13 총선 공천 후유증이 그렇다. 진박 마케팅(진짜 친박)은 애국 마케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맞고 틀린 것만 받아들이고 같고 다른 것에는 눈을 감은 탓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튤립 광풍은 금융 투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튤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너도나도 샀다. 튤립은 꽃이 아니었다. 튤립이 꽃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 것은 가격이 폭락하고 난 뒤였다. 대구가 맞딱뜨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 끝나고 난 뒤에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구나 대구는 '태양의 후예'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잘해도 '대구의 후예'일 뿐이다. 총에 맞은 아구스는 자신을 치료해준 강모연에게 말한다. "위험한 남자랑 다니시네. 총 든 남자 옆에 있으면 총 맞을 확률이 높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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