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새누리당, 이러고도 집권당인가

입력 2016-03-24 21:36:11

23일 밤 새누리당은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집권당이라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에 대한 공천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꼼수에 꼼수'를 뒀다. 비정상 공천의 극치를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듯하다. 그동안 총선을 앞두고 공천 결과가 발표되면 진통과 소란은 일어났지만 이번 공천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새누리당은 '무공천 카드'까지 꺼내며 압박해 결국 유승민 의원을 당에서 쫓아냈다. 새누리당의 공천은 '유승민'으로 시작해서 '유승민'으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누리당은 후보등록 전날인 23일 밤늦게까지 최고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날 탈당하지 않으면 무소속 출마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 의원은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유 의원은 결국 밤늦게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 공천 파동은 새누리당 막장 공천의 극치다. 헌법 제8조 2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돼 있다.

정당이 총선에 내보낼 후보를 뽑는 과정은 합리적 기준과 공정한 절차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유 의원 공천을 심사한 기준은 공정성과 거리가 멀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정체성을 문제 삼았지만 유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한 것이 공천 배제의 원인이란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유 의원을 당에서 몰아내는 방법도 집권당답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할 때부터 유 의원의 공천 탈락은 충분히 예견된 문제였다. 밉지만 쳐낼 용기도 없으면서 치려고 하다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여줬고 되레 반발심만 더 키웠다.

공관위는 유 의원과 친한 후보들을 축출하고, 유 의원의 공천 여부는 질질 끌면서 후보등록 전날 밤까지 끌고 갔다. '장수'와 '수족'을 동시에 치면서 '장수'가 싸울 수밖에 없는 명분을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반발은 당연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는 데드라인인 23일 자정 직전 현역의원 출마자들의 탈당이 러시를 이뤘다. 유승민 의원을 포함해 공천에서 탈락한 주호영(대구 수성을), 류성걸(대구 동갑) 의원 등 현역의원 3명이 이날 탈당계를 냈다. 이에 앞서 권은희(대구 북갑) 의원도 지난 21일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계와 비박계 의원들은 다수가 경선도 없이 컷오프(공천 배제)됐다. 여론조사 순위, 의정활동 성적이 앞서는 후보들이 영문도 모르고 줄줄이 탈락했다. 컷오프된 한 현역의원이 "납득할만한 어떤 설명도 없다. 그분들의 결정은 언젠가는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시민 여러분이 반드시 심판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달라"고 외친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런 혼란 속에 김무성 대표의 한 수가 단행됐다. 김 대표는 24일 자신이 공천안 의결을 보류한 대구 동갑, 동을, 달성 등 5개 지역에 대한 대표 날인과 최종 의결을 거부한 채 지역구인 부산으로 가버렸다. 새누리당 공천 파행의 '절정'이었다.

이제 유권자의 결정만 남았다. 대구 유권자가 판단을 내릴 차례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집권당의 오만과 무례에 대해 자존심이 강한 대구 사람들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친박 세력이 대구를 향해 이른바 '막장' 공천을 한 데는 지금까지 1번이라면 '묻지마' 지지를 보내준 대구 유권자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대구에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산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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