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동주' 배우 박정민

입력 2016-03-23 18:15:35

배우 박정민(29)이라는 카드가 통했다. 연기는 잘하지만 그리 인지도는 높지 않았던 그는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강하늘) 시인만큼 존재감 높은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오롯이 소화했다.

일반 대중은 윤동주 시인의 이름은 알지만 송몽규는 잘 알지 못했다. 박정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정민은 이준익 감독이 큰 역할을 맡겨준 데 대해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송몽규라는 실존 인물을 알고 싶어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매번 대본을 보면 '열심히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그는 이번에는 가슴으로 공부하고 이해해야 했다. 침울했던 일제강점기와 맞서려던 송몽규가 마음속에 지닌 한의 크기를 가늠하려 했고, 쫓아가려 했으나 그럴수록 송몽규는 더 달아났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두 청년의 이야기가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송몽규 선생의 묘지를 찾아가 선 순간 울컥했어요. '나 좀 도와달라'며 찾아온 제가 한심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마신 공기와 산, 들녘 등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경험하려고 갔는데 부끄러웠죠. 연기 잘해서 어떻게든 한번 관심 받아보겠다고 찾아간 거잖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죠."

박정민은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열정은 차고 넘쳤다. 송몽규가 울분에 차 피를 토하듯 내지르는 후반부 절규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했다. 영화 제목은 '동주'이지만 '몽규'라고 읽어도 하등 상관없다. 칭찬하자 그는 "아닙니다"라며 뒤로 물러나 자신을 낮췄다. "제가 자신감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죠. '나 연기 잘하지?'라는 말은 전혀 못 하는데 카메라가 돌면 할 수 있어요. 평상시에 화도 안 내고 슬퍼도 안 울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죠. 전 제 연기가 완성됐다고 생각하거나 자신감에 차는 순간 나태해질 것이라는 걸 알아요. '배우가, 남자가 왜 자신감이 없어?'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제 모습이 싫지 않아요."

친척이자 벗,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주인공이었으니 물을 수밖에 없다. 박정민에게 라이벌은 누구일까.

"고등학교 동창이자 영상원 동기 조현철이요.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줬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 영상원 가겠다고 소문 다 내는 스타일이었는데 현철이는 시험 보기 며칠 전 갑자기 영상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나 떨어지고 현철이가 붙으면 바보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인지 둘 다 떨어졌어요. 하하. 같이 살면서 입시 준비를 하고 붙었죠. 현철이는 아직도 넘을 수 없는 산 같아요."

박정민의 대중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과거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써주는 데 여전히 아직인 것 같다"고 했다. 변화가 있었을까.

"여전히 저를 보고 '그래, 영화 파수꾼의 그 친구'라며 알아봐 주시는데 써주진 않아요. 배우가 작품 끝나고 삶이 쪼들릴 때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안 될 때가 잦거든요? 그 기간이 무명배우가 힘들어하고 포기하는 때죠. 그 감정이 도움되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많이 소모돼요. 아직도 전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동주'는 박정민에게 큰 의미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그를 연기한 박정민이 묘하게 겹친다. 박정민이 본인의 존재감은 물론, 송몽규까지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멋지게 그 역할을 해냈다. 이 저예산 영화는 100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영화라고 불리게 됐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