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생각] 커피 단상

입력 2016-03-23 16:55:03

시골 다방에 손님 셋이 들어왔다. "난 모카, 나는 헤이즐럿, 어이! 난 카푸치노." 이 말을 들은 다방 아가씨 "언니, 홀에 커피 세 잔요~."

오래전 시중에 나돌던 우스갯소리 한 토막이다. 40, 50대들이라면 이 말에 크게 공감이 갈 것이다.

우리 세대가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커피는 다방 커피가 대부분이었다.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세 스푼의 '계량 단위'가 거의 통일되어 있었다.

소수의 마니아들이 블랙을 마셨는데 이것도 커피에서 설탕과 프림을 뺀 것일 뿐 바탕은 그대로 인스턴트 커피였다. 자판기 역시 커피, 프림, 설탕의 황금 비율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40, 50대들에게 커피는 단맛과 향, 각성제의 의미로 다가온다. 거기에 약간의 허영심까지.

지금도 비슷하지만 우리 세대 커피는 면학이나 수험의 필수품이었다. 기자가 독서실에서 2년여 취업 백수생활을 할 때 커피의 카페인은 기자를 '각성'(覺醒)시키고 면학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었다. 애호가들이 '커피 등장 이후 지성(知性)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지적(知的)인 진보는 몰라도 커피가 시험 성적을 올려준 공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방 커피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캔 커피였다. 포장 용기와 차게 마신다는 점만 다를 뿐 캔 커피는 다방 커피를 그대로 재현해낸 것에 불과했다.

2000년대 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 체인점들이 들어오면서 커피산업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다방 커피'로 통용되던 메뉴판엔 낯선 이름이 가득 채워졌다.

우리 부부는 한때 바뀐 커피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원두나 무설탕, 무프림 커피를 구입해 한동안 마셨다. 취재차 들렀던 어느 커피연구소에서는 사향 고양이 배설물로 내렸다는 '르왁'을 마시며 입맛의 '전향'을 시도하기도 했다. 칠곡의 어느 숍에서는 에티오피아 산악지대 야생커피 생두로 만들었다는 더치(Dutch)커피도 마셔 보았다. 맑고 순한 커피 향이 독특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 커피 패턴을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커피 문화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우리처럼 다방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메리카노, 더치, 블랙의 차이를 잘 감지해 내지 못한다. 물론 향이나 끝맛에서 약간의 차이를 감지하기도 하지만 그 '차이'가 우리의 커피 문화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다시 스틱 커피를 빼들었다.

달달한 맛에 졸음을 쫓아내는 데는 봉지 커피만 한 게 없다. 커피 기호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몸에 맞는 것, 익숙한 일만 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우리가 그토록 경원(敬遠)해 마지않았던 보수나 '완고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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