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안동의 보물을 찾다](2) 도시와 농촌을 잇자

입력 2016-03-21 20:02:53

내 고장 순례길 걷기

식사하세요
농산물 구입하기
식사하세요
농산물 구입하기

개구리가 봄꽃 내음에 긴 잠에서 깨어 고개를 내민다는 춘삼월의 첫 주말이었던 지난 5일(경칩) 아침. 고향길을 걷기 위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안동대학교로 모여들었다. 네 살배기 어린 아이를 앞세운 아빠는 아이가 고뿔이라도 걸릴까 연신 옷을 여며준다. 때마침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고, 하늘도 잔뜩 찌푸려 비를 흩뿌리지만 길을 걷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선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간식으로 준비된 어묵 솥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입맛을 당기게 한다. 붕어빵 포장마차에는 출출한 배를 채우고, 동심으로 빠져들고 싶은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선다. 이들에게 이날의 걷기는 기대감이다. 평소에 잘 걷지 못하던 길을 나서고, 그 길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자연과 역사'문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슴을 둥당거리게 한다.

◆고향의 속살을 느끼게 해주는 내 고장 순례길

솔뫼 앞 다리를 건너 강둑길을 걷노라면 반변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신덕리 산야엔 연둣빛이 묻어나고 면 소재지 주변 들판의 봄 흙 내음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맑은 물의 대명사 길안천을 건너 추월(秋月)로 접어드니 가을 달이 아름다운 장수마을이 반겨준다. 추월정 앞마당에 낭만이 흐른다. 안동 최고예술가들의 고품격 공연에 회곡막걸리를 더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동네가 열린 이래 가장 많은 인파다. 좀 더 놀다가길 바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눈빛. 아쉬움을 달래며 발길을 재촉한다. 임하천과 길안천이 합수되는 두물머리, 습지 사이로 반짝이는 물빛을 감상하며 시간여행에 젖어든다. 백운정 뒷산 너머 장송(長松) 군락지, 굽이굽이 펼쳐지는 구릉의 논밭들, 임호서당과 선유정 솔숲, 국탄댁 고택을 돌아서니 평화로운 전통마을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이우당종택을 스쳐 지나 마을 안길을 휘도니 45년간 이웃을 지켰다는 동부슈퍼와 예배당이 순례객을 반긴다. 마침내 종착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잘 단장된 마을회관, 드넓은 잔디밭에 풋풋한 마음을 나누는 순박한 사람들, 이 마을 부녀회원들이 마련한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시골 정취를 만끽하며 뚝딱 비워낸다.

이 마을에서 생산된 토종 농산물 한 움큼 사들고 시내버스에 몸을 실으면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는다.

'도시와 농촌을 잇자'는 소박한 꿈으로 시작된 내 고장 순례 걷기모임이 벌써 13차례 길을 나섰다. 내 고장 순례 걷기는 안동의 자연과 문화를 벗 삼아 길을 걸으면서 우리 고장의 속살을 느끼게 해주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날은 안동대를 출발해 반변천을 건너 남선 둑길을 따라 임하면사무소까지 걸어가다가 추월정에서 문화행사를 갖고 임하1리 회관에서 일정을 마치는 12㎞ 구간에서 진행됐다. 이날 길을 나선 이들은 지역주민과 서울에서 찾은 출향인사 등 6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추월과 임하로 이어지는 옛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수백 년 이어오는 역사에 젖어들고, 농촌 아낙네의 넉넉한 인심에 취했다.

◆길 나선 600명, 선물 같은 손님 맞은 농촌 주민

길을 나서자마자 안동대 앞 도로변을 가로질러 조성된 '동인문'(東仁門)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상징하는 동쪽 관문으로 웅장한 자태를 보인다. 안동시가 유교 기본 이념인 '인'의'예'지'신'의 의미를 담아 사방의 관문마다 전통 건축구조로 문을 조성해 둔 것. 특히 동인문은 빼어난 곡선미를 살리고 화려한 색상과 조명을 담아 밤에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일행은 반변천을 건너 남선 둑길을 걸었다. 간밤에 내린 봄비로 잔디가 물기를 머금고 있어 사람들의 발걸음에 따라 '착착, 사각사각' 소리로 경쾌함을 전한다.

이 소리에 심취한 한 인사는 큰 걸음으로 잔디를 힘껏 밟아 진흙이 바지 가랑이를 적셨지만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으로 가득하다. "아주 어릴 때 비가 온 뒤 잔디가 물기가 없는 것처럼 보여 발을 내디디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물들이 튀어 오르곤 했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 몇 번이나 잔디를 밟다 보면 바지가 다 젖어서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난다"고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좁은 둑길을 걷는 1시간이 금세 지난다. 누구 하나 지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혼잣말로 시를 읊기도, 노랫말을 흥얼거리기도, 함께 걷는 이들과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는 사이 임하면사무소에 다다른다.

때마침 인근 농협 주차장에는 대형버스 7대가 줄지어 들어선다. 이날의 고향길을 함께 걷기 위해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한 출향인사들이다. 이들은 손을 잡고 부둥켜안으면서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처럼 서로를 반긴다.

류목기 재경 대구'경북 시도민회 회장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며 고향의 산천에 대한 추억이 있다. 향우회 회원들은 새벽바람을 맞으면서 3시간 넘게 좁은 버스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고향 안동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걸으러 왔다"고 한다.

이들에게 이날의 길은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이었다. 타향살이에서 온 삶의 고단함을 씻어준 고향에 대한 향수였다.

◆자연 느끼고, 역사 배우고, 농촌 인심 덤으로

가을 달이 아름다운 마을 '추월'의 마을회관 앞 '추월정'에는 마을을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람을 반기는 정이 넘쳐 났다. 김시열 이장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부녀회는 간식과 한방차, 사과를 준비했다.

길을 나선 이들이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문화행사가 마련됐다. 이날 문화행사는 길을 나선 사람들 가운데 끼와 열정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안동시립합창단 베이스로 활동하는 권대일 씨가 멋진 가곡을 선물하고, 안동 학가산 온천에 근무하는 권금희 씨는 시 낭송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권 씨는 지난해 '제3회 영동 감 고을 전국 시낭송 대회'에서 유안진 시인의 '자화상'을 낭독해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권 씨는 '아버지의 기침소리'를 낭송해 듣는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안동 정하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차월령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요들송'도레미송 등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에 만점 입학해 화제가 됐던 베이스 김대협 씨는 'My way'와 '아름다운 나라'를 불러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통기타 라이브 가수인 이미숙 씨는 흥겨운 노래로 모두를 어깨춤 추게 했다.

이렇게 이날 길의 여정은 임호서당과 선유정 솔숲, 국탄댁 고택을 지나 이우당종택을 거쳐 임하리에 도착해 마무리된다. 고향길 걷기에 나섰던 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임하리 어르신들이 가꿔 생산해낸 농산물을 보따리째 사들고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길을 나섰던 한 인사는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고향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걷기 행사다. 그냥 걷기보다 지역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역사를 배우면서 농촌의 인심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길 걷기의 모범이다"고 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