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용기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시면 안 됩니다. 원룸에 거주하는 주민께서는 지정 용기를 구입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셔야 합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며칠 전 밤 9시쯤이었다. 길을 지나가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혹시나 싶어 차 옆으로 다가갔다. 머릿속에 떠올린 아는 사람이 맞았다. 평소 환경 문제와 아이들 교육환경에 대해 남다른 열과 성을 갖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대구시 북구의회 의원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나무라듯 말을 건네자 "견딜만해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생활 정치인'이라는 용어를 흔히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그렇게 부르고 싶은 순간이었다.
정치인을 도매금으로 싸잡아 불신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번갈아 타며 마을을 누비는 그 북구의회 의원을 대할 때마다 그가 정치인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선입견의 최대 피해자는 아닐까 생각했다. 최근 그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가 사는 곳 인근에 새로 생긴 한 구립도서관 2층 열람실에 가면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석에 앉아 책을 펼쳐 놓고 뭔가 열심히 옮겨 적는 모습을 본다. 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느냐고 물었더니 "북유럽 청소년 교육 시스템의 좋은 사례를 찾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스승이다"고 했다.
며칠 전 식당에서 그가 윗도리를 벗자 드러난 스웨터 팔꿈치 부분에 난 구멍을 보고 놀린 적이 있다. 그는 "20여 년 전 아내가 선물해 준 옷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입고 다녔는데, 이렇게 낡고 해져 있는 줄은 몰랐다"며 웃어넘겼다. 그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평생 셋방을 전전했고, 지금도 전셋집에 산다. 대신 자신의 지역구에서 아내와 함께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한 '감나무골 작은 학교'를 3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그는 "공직자 재산등록 신고 때 부채가 많아 재산이 마이너스인데 신고를 하자니 부끄러워 고민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요즘 정치인들이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선거 시즌에만 '반짝' 주민들을 상대로 허리 굽히기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작 당선이 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될수록 생활 정치인의 존재가 더욱 조명받을 것은 당연지사다. 정치는 봉사와 권력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 선진적인 정치의식은 봉사에 초점을 맞추게 만들고, 정치의식이 후진적일수록 권력에 치중하게 되는 것 아닐까.
4'13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권력 다툼이 아닌 국민의 삶을 걱정하는 그런 정치인이 당선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그냥 '바람'으로만 끝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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