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3월 11일 정비석은 서울신문에 '탈선적 시비를 박함'이라는 제목으로, 황산덕 서울대 법대 교수의 '소설 자유부인'에 대한 비난을 반박했다. 이에 앞서 황 교수는 대학신문에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며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국가의 적"이라고 서울신문 연재소설 자유부인(1954년 1월 1일~8월 6일'215회)을 성토했다. 황 교수가 다시 며칠 뒤 서울신문에 더욱 강력한 비판의 글을 싣자, 이번에는 변호사 홍순엽과 문학평론가 백철까지 논쟁에 뛰어들었다.
소설 자유부인은 6월 24일 자에 "공무원을 비하하는 내용이 있어 죄송하다"는 작가의 석명서가 광고란에 실리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만큼 소설 속에서 현직 교수와 그의 부인이 벌이는 일탈의 감정과 애정 행각은 전통적인 부부상에 충격을 던졌다. 논란 덕분일까, 자유부인은 10만 부가 팔려 최초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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