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삼십만원어치 가르침

입력 2016-03-04 22:30:02

설 보름 전날이 어머니 생신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의 마음은 짠해집니다. 수십 년 동안 장사하시며 온갖 고생을 하셨고, 그나마 조금 살만해졌을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둘에 의지하려니까 믿었던 장남이 느닷없는 사고를 당해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이지만 제대로 아들 노릇 못 하는 신부인 저만 남았기에 마음 한구석에 늘 '죄송'이라는 이상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행히 누님 두 분과 자형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주어 참 고맙고, 또 신앙 안에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시는 분이기에 어느 정도 안심을 합니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시골 누님 집에 모였습니다. 아들, 딸, 사위, 외손자, 외증손자가 소박하지만 예쁘고 정성이 담긴 생일잔치를 벌였습니다. 저는 저 나름 거금 30만원을 준비해 슬그머니 주머니에 찔러 드렸습니다.

다음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드린 용돈 봉투를 잃어버리신 것입니다. 형제들과 함께 방이며 마당이며 밭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나타날 거라고 위안을 드리고 다시 포항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전에도 잊어버리셨다가 나중에 떠올리신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이 쓰였습니다. 평소 나이가 들어 자꾸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힘이 떨어지는 것을 한탄하시던 분인데! 또 하나뿐인 아들 신부가 드린 선물인데 잃어버리셨으니, 몇 날 며칠을 속상해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연락해서 물어보자니 더 마음이 상하실 것 같아 며칠 지나 누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어머니께서 찾으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안심을 했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성격상 자식들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시기에, 아마도 거짓 말씀을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못 찾으면 누님들이 찾았다고 하면서 또 돈을 마련할까 봐!

보름 후 설날 미사를 드리고 다시 집으로 갔습니다. 차례를 지내고 어머니께 같은 금액을 담아 봉투에 넣어 드리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보시지요. 못 찾았지요?" 대답은 제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그리 속상하지 않은 표정이셨습니다. 못 찾긴 했는데 이젠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어떻게 정리했느냐고 되물었더니, 지난주일 본당신부님 강론을 듣고 다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설 명절에 자식들이 주는 돈을 아깝다고 꼭 쥐고 있지 말고, 제발 어떻게든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사 입든지, 가족들 밥값을 내든지 어떻게든 사용하라고 드리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언뜻 별말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는 큰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내가 그 30만원을 가지고 있었으면 분명히 안 쓰고 어디 숨겨놓았을 건데, 내가 안 하니까 하느님께서 신부 아들 용돈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셨구나"는 것입니다. 시골에 뭐 그리 잘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누구든 주운 사람은 복 받았다고 생각하고 잘 쓸 것이고, 어머니는 아들 선물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준 것이니 이제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를 삶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보다 더 많이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한자로 소유(所有)라는 말을 보면, 지게문(戶, 마루에서 방으로 연결된 쪽문) 앞에 도끼(斤)가 있다는 말입니다. 장작이 한 더미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나무를 마련할 도끼가 있다는 것입니다. 땔감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지면 또 마련하면 됩니다. 소유를 뜻하는 영어 Possession은 라틴어 potere(할 수 있다)와 sedere(앉다)의 합성에서 나온 말입니다. 독일어로 소유를 가리키는 Besitz 또한 앉음을 뜻합니다. 앉아있을 때만 내 자리이지, 일어나면 또 다른 사람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것은 없습니다. 잠시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일 뿐입니다. 있을 때 좀 나누면서 살아갑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