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신도청 시대 사람들] 녹즙 배달 아줌마 김동순 씨

입력 2016-03-04 22:30:02

13년 간 情 나눈 도청 공무원들, 그 정 못 버려 따라왔어요

도청에서 녹즙을 배달하는 김동순(51) 씨는 경북도청이 지난달 안동
도청에서 녹즙을 배달하는 김동순(51) 씨는 경북도청이 지난달 안동'예천으로 이사하자 가족과의 생이별을 마다하고 홀로 따라왔다. 몸은 힘들지만 새로운 인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정욱진 기자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이들의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인생의 결단을 내린 사람들은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경북도청 공무원들에게 매일 아침 신선한 녹즙을 배달하고 있는 김동순(51) 씨에게도 2016년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해가 됐다. 녹즙 배달원이 지난달 이사를 마친 경북도청을 따라 안동까지 이사를 했다면 그 열정은 고위공무원 못지않은 것 아니겠는가. 도청 이전으로 새 삶에 도전하는 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2년부터 13년 동안 매일 경북도청을 드나들었어요. 공무원들은 이미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됐어요. 그들이 떠난다는데, 당연히 따라가야지요. 도청분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사했어요." 이사 이유는 시원스럽게 밝혔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구에서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다 컸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들을 두고 혼자 안동으로 가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족회의만 수차례 했다. "한 달 동안 설득을 했어요. 특히 남편 반대가 심했지요. 이참에 일을 그만두라고 하더군요. 회사 대구지점에서도 돈을 더 줄 테니 남으라는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어요."

그러나 김 씨에게 도청 공무원들은 어느새 고객 이상의 존재가 돼 있었다. "도청이 이사하기 전부터 고객분들이 '우리만 보낼 것이냐' '우리 건강은 누가 챙기느냐' '같이 가자' 등의 얘기를 많이 했어요. 농담이라고 받아넘기기엔 그동안의 정이 무섭더군요."

그래서 지난 1월 안동에 조그마한 방을 하나 얻어 새살림을 시작했다. 지난 1991년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가족과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던 터라 처음 며칠은 눈물만 났다고 한다. 김 씨는 "저녁에 코딱지만 한 방에 혼자 있으니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펑펑 울었다. 그날 밤에 남편하고 휴대전화를 붙잡고 몇 시간 통화를 하면서 같이 눈물도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신도청으로의 첫 출근인 지난달 22일, 김 씨의 얼어붙은 마음은 이내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다고 했다. 만나는 공무원마다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따뜻하게 안아줬기 때문이다. "전부 '진짜 왔나. 잘 왔다'는 반응이었어요. 몸은 힘든데, 진짜 마음은 날아가는 기분이었지요.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김 씨는 대구 산격동에서 경북도청과 경북교육청 직원 400여 명에게 녹즙과 유산균을 배달했는데, 안동에 이사 오자마자 신규 고객 100여 명이 더 늘었다고 한다. "안동에 이사 오면서 혼자 온 직원들이 많고, 이런 직원들은 당연히 건강 생각부터 할 수밖에 없지요. 또 대구보다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 보니 녹즙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테고요." 김 씨는 고객이 증가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지만, 실상은 '녹즙 배달 아줌마가 안동까지 따라왔다'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도청 직원들의 고마움의 표시였던 것.

그래서 김 씨의 하루는 더 바빠졌다. 대구에 있을 때보다 1시간 빠른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난다. 일과 시간도 5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그때면 도청엔 직원들이 거의 없는 시간이다. "배달 물량이 늘었고, 특히 청내 실'국 위치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서 평소보다 훨씬 일찍 시작합니다. 대구에서는 점심때쯤이면 일이 거의 마무리됐는데, 여기서는 오후 6시는 돼야 끝이 나지요." 하루 종일 발품을 팔다 보니 김 씨의 얼굴은 안동에 정착한 지 한 달여 만에 반쪽이 됐다.

그는 "일은 더 힘들어졌지만 대구에 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것 같아요. 맑은 공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몸과 마음이 함께 맑아진 기분이랄까"라고 환하게 웃었다.

김 씨는 '인생 2막'으로 선택한 안동에서 노후 설계를 하고 있다. "남편이 2, 3년 후면 퇴직합니다. 예전부터 남편이 퇴직하면 고향인 경산에서 전원생활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지역을 안동으로 옮길까 생각하고 저 먼저 이리로 왔어요. 3년만 고생하면 꿈꾸던 노후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데, 안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안동에는 정든 사람들도 많고, 공기도 좋으니 더할 나위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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