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관절염센터 최정윤 센터장

입력 2016-03-04 22:30:02

류마티스는 시간과의 싸움 한시라도 빨리 의사 찾으세요

"관절염은 초기에 발견해서 일찍 손을 쓰면 '관절 변형'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습니다." 대구가톨릭대 류마티스관절염센터 최정윤 센터장이 진료실에서 관절염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노인 저격수'라 불리는 류마티스 관절염. 30세 이상 인구 중 1%가 이 병을 앓고 있고 국내 환자 수는 약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만성질환 환자 삶의 질' 조사에서 아토피, 천식 환자와 비슷하게 분류될 정도로 해로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류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병이지만 그 원인 규명에 대해서는 아직도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 상태다.

자가면역성(自家免疫性), 오토 이뮨(Autoimmune) 등 까다로운 용어만큼 진료도 대부분 서울의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독점 구조를 깨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의사가 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관절염센터(이하 류마티스센터) 최정윤(57) 센터장이다. 류마티스센터는 개원 22년 만에 내원 환자 4만 명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며 한강 이남 최고의 전문병원으로 발돋움했다. '한강 이남'을 넘어 수도권 대형병원에까지 도전장을 낸 최 센터장을 만나봤다.

◆한국의학한림원 정회원 선정=작년 말 그의 사무실에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국 의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잘 알고 있듯 한림원 회원 자격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문 분야 연구 경력 20년 이상에 논문 점수를 포함한 실적 등 심사항목 총점이 250점 이상 되어야 한다.

"몇 년 전에도 한림원에 회원 신청을 냈었습니다. 총점 기준을 두 배(500점)나 넘겼는데도 떨어졌습니다. 오기가 생겨 4배 정도 총점을 올렸더니 드디어 인정을 해준 것 같습니다."

최 센터장의 연구 성과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받는 기록이 있다. 브릭스 선정 '한빛사'(한국을 빛낸 사람)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외국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중 제1 저자급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2015년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 논문'으로 한빛사에 선정되었고 2003년 미국 샌디에이고대학 연수 때 '면역학 논문'으로 이 심사를 통과한 바 있다. 이 분야 2관왕은 임상의로는 흔치 않은 기록으로 국제학술지에서 논문의 경쟁력을 입증받은 것이기도 하다.

◆한강 이남 최고 류마티스 치료병원=국내에서 류마티스 하면 김성윤 전 한양대 교수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김 박사는 초창기 불모지나 다름없던 류마티스학회를 이끌며 한국에서 관절염 치료의 첫 장을 열었다. 최 센터장의 류마티스 입문도 김 박사와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20여 년 전 선배의 소개로 첫 인연이 닿았습니다. 초창기엔 매주 한양대를 찾아가 공부를 했어요. 10년 넘게 비행기표 수백 장을 뿌리며 임상과 이론 체계를 조금씩 쌓아 갔습니다."

1994년 최 교수는 대구가톨릭대에 류마티스전문센터를 열었다. 지방에서는 최초였고 전국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개원 후 지역에서 독보적 위치를 지켜가며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수도권 의료진에 견주어 한 단계 도약의 계기가 필요했다. 면역학, 기초이론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한 최 센터장은 2002년 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에 교환교수를 자청했다.

"정말 1년 반 동안 원도 한도 없이 실험을 했던 것 같아요. 매일 케이지(cage)를 드나들며 쥐 실험을 했어요. 제가 잡은 쥐만 500마리는 족히 될 겁니다."

연수 후 최 센터장은 류마티스 면역체계 임상 이론가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100편이 넘는 SCI급 논문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최 센터장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매년 류마티스센터엔 4만 명 이상의 환자가 노크를 했다. 신규 환자만도 2천 명을 넘어섰다. 한강 이남뿐 아니라 전국을 통틀어도 '빅3'에 드는 숫자였다.

◆민간요법 의존했다간 치료 낭패=류마티스 관절염은 암, B형간염, 루푸스, 에이즈 등처럼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긴 질병으로 아직까지 병의 원인에 대해 밝혀진 게 없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어 의학계에서는 '악마의 병'으로 불린다.

본격적인 치료의 장이 열린 것이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질병 이름조차 생소했다.

최 센터장은 2006년 류마티스학회 홍보이사를 맡으면서 이 병의 실체를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환자들이 민간요법에 의존하다 치료 시기를 놓쳐 최악의 상황까지 이른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100마리 고아 먹었다는 환자가 있었고 말뼈, 지네는 기본입니다. 원숭이 골을 먹었다는 환자도 보았어요. 류마티스 관절염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병원에 빨리 올수록 의사가 도와줄 일이 많은 병입니다."

류마티스는 꾸준히 관리하면 환자의 80% 이상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최근 새롭게 개발된 약물들은 환자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유전적 특징과 여성들에게 많이 발병한다는 점이다. 가족력 요인은 약 60%에 달하고 환자 수도 남성보다 여성이 4배 정도 많다. 최 교수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도 바로 이 점이다.

"병의 대물림 특성상 모녀 환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학생으로 왔던 환자가 결혼 후 딸과 같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는 3대까지 이 병 때문에 저와 인연으로 엮이기도 합니다."

◆의사의 사표가 돼준 두 분의 멘토=최 교수에게는 두 분의 멘토가 있다. 한 분은 의사였던 선친이고 또 한 사람은 김성윤 전 한양대 교수다. 몸이 불편했던 선친은 휠체어를 타고 진료를 했다. 늘 인자한 미소로 환자를 맞으시던 인술(仁術)은 가르침이 되어 그를 의사로 이끌었다.

또 한 분의 스승은 20년 넘게 멘토 멘티, 사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성윤 박사. 학연도 지연도 없던 낯선 지방 의사의 방문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고 새벽 전화에도 언짢은 기색 없이 학술적 갈증을 채워주었다.

작년 그의 진료실을 찾은 누적 환자는 2만여 명. 전국 최고 수준이다. 환자 수로만 본다면 일단 명의(名醫)의 외형은 갖춘 듯하다. 그러나 최 센터장은 두 분의 멘토 앞에서 몸을 낮춘다.

"저도 환자들한테 한다고 합니다만 두 분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저는 병을 고치는 '기능적 의사'일 뿐이고 두 분이야말로 진정한 힐러(healer)들이셨으니까요."

◆최정윤 센터장 걸어온 길

1960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 오성고를 거쳐 1985년 경북대 의대를 졸업했다. 1994년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류마티스 클리닉을 시작했다. 2009년 250억원의 국비를 지원받는 대구경북권역 류마티스 및 퇴행성 전문질환센터로 선정되었고 현재 센터장을 맡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교환교수를 거쳤으며 현재 대한류마티스학회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2007년 대구시의사회 학술상을 받았고, 2016년 한국의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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