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시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하지만 선거는 1인 1표라는 형식과 상징성만 가진 구성 요소일 뿐 스스로 민주주의를 완성하지 못한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선거만큼은 그렇다. 유권자는 국가라는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대주주가 아니라 겨우 손에 쥔 1표의 지분만큼 모기 목소리를 내는 소액주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는 선거에서만큼은 '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을의 위치에 있는 피선거권자와 정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죽 주무르듯 만든 틀에서 움직이는 구조가 바로 선거판이다. 결론적으로 '유권자=갑'은 엄청난 착각이자 오산이다. 단적으로 여야가 140일 가까이 이전투구하며 끌어온 선거구 획정 논란만 봐도 유권자는 을은커녕 병의 위치에도 얼씬할 수 없다. 유권자를 감로수가 떨어지는 득표 자판기쯤으로 여기는 정치판의 낡은 인식 때문이다.
여야'정파 따라 나뉘고 갈리는 정치인의 탐욕과 고약한 몽니가 한국 민주주의를 훼손시킨 지 오래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철이면 역설적으로 민(民)은 졸(卒)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주주의라는 나무에 물을 주고 선거로 힘을 실어주는 국민에게 돌아오는 결실은 한마디로 쥐뿔이다. 그냥 들러리라는 소리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선거니, 비례와 균형에 입각한 과정이라고 떠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선거는 요식행위이자 칼자루 움켜쥔, 목소리 큰 정파와 정치인이 벌인 '먹을 것 없는 잔치판'이다.
왜 이런 상황이 수십 년째 바뀌지 않느냐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낼 수 있다면 선거를 통한 성숙한 민주주의, 바른 정치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유권자는 정치인의 탐욕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 사람의 눈에 빛이 하나의 색으로만 보이듯 유권자에게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단이 없고, 스펙트럼을 읽어낼 능력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광학적으로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프리즘이라는 도구를 통해 확인한다. 프리즘이 없다면 인간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볼 수 없다. 프리즘은 빛의 진행 방향을 바꾸거나 빛을 각 파장으로 분산시키고 편광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구현한다. 이 같은 분광기를 거치지 않는다면 물질이나 입자의 실체, 가시적인 색깔로 나타나는 스펙트럼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빛의 스펙트럼에는 흔히 알고 있는 무지개 색만 있는 게 아니다. '프라운호퍼 라인'이라는 검은 띠도 존재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은 오직 무지개 색만 있다고 우기지만 민주주의라는 빛의 스펙트럼을 정확히 간파하고 검은 띠의 정체를 구분해내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친박'비박 멱살잡이에다 진박 경쟁까지 벌이는 새누리당, 새 간판 단 지 몇 년도 안 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세포분열하듯 갈라서는 야당의 행태는 과거 사색(四色) 당파가 부럽지 않다. 지루한 권력 싸움, 밥그릇 싸움에 국민 얼굴은 질리다 못해 거의 사색(死色)인데도 분열을 정치의 다양성으로 왜곡하고 속이려 드는 게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에서 입장료만 걷고 질 낮은 쇼를 보여주는 게 한국 정치판의 고정 레퍼터리다. 빨강과 파랑, 녹색, 노랑 등 당색(黨色)을 물들인 점퍼나 걸치고 공천 심사위원에 넙죽 큰절하는데 온통 신경을 쓸 뿐 붓두껍을 쥔 유권자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정치인, 후보자에게서 민생과 경제,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
4'13 총선은 민주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정치의 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하고 구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누가 고유한 색을 보여주는 대표 충복인지 아니면 자리 욕심에 흙탕물을 만드는 정치 모리배인지 가려내야 한다. 유권자가 들이대는 살생부에 정치인이 벌벌 떨어야 그게 진짜 민주주의 아닌가. 총선 뒤에도 '정치? 개뿔'이라는 소리 나오지 않게 밝은 눈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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