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는 사람에 골목해설

입력 2016-02-25 20:30:30

시각장애 최은찬·권윤경 씨, 중구 골목문화해설사 활동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윤경(왼쪽), 최은찬 씨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귀로 보고 마음을 통해 문화를 전한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윤경(왼쪽), 최은찬 씨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이들은 귀로 보고 마음을 통해 문화를 전한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엄마 좀 웃어봐. 윤경이 이모는 손동작도 하고 표정도 좋은데 엄마는 왜 이렇게 굳었어."

해설을 지켜보던 초등학교 6학년 딸의 조언에 억지로 웃어보지만 최은찬(44'시각장애 2급) 씨의 표정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딸이 언급한 '이모'는 동료 권윤경(36'시각장애 1급) 씨다. 최 씨는 "몇 년 전 아나운서 체험활동에 참여한 딸에게 못한다고 타박했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웃었다.

시각장애인인 최 씨와 권 씨는 대구 중구에서 골목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3월 중구청과 남산종합사회복지관, 대광불자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시각장애인 골목문화해설사 양성프로그램'을 수료한 이들은 지난달부터 근대문화골목 2코스와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배치됐다.

두 사람은 이론교육(3개월)과 현장실습(6개월) 과정을 거쳐 골목문화해설사증을 당당히 목에 걸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보이는 것'을 익혀야 했기 때문. 두 사람은 24시간의 이론교육을 모조리 녹음해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 권 씨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외우는 게 최고의 공부법이었다"며 "10개월간 출석률 100%에 누구 하나 지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 씨는 교육을 통해 또 다른 선물을 얻었다. 사춘기로 갈등을 겪던 딸과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이다. 하굣길 교통정리 봉사를 하던 엄마를 피해 먼 길을 돌아 귀가했던 딸이 이제는 현장실습을 나가는 엄마의 활동보조인으로 따라나서고 있다. 딸은 엄마의 눈이 돼주며 자연스레 엄마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 최 씨는 "사람들을 인솔하며 도로를 건널 때가 가장 마음이 조마조마하는데 딸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수료식 때는 딸과 부둥켜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권 씨는 투어를 진행할 때마다 본인의 시선이 관광객들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는 게 교감의 첫 번째라 생각해서다. 권 씨는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관광객들에게 '무엇이든 만져보라'고 제안한다. 읍성의 돌, 박태준 노래비와 99계단에 새겨진 글자, 이상화 고택의 기둥 등 모든 것이 대상이다. 권 씨는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면 모든 사물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 경험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작은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장애인들 속에서만 살던 내가 이제는 누구와도 대화하고 만날 용기가 생겼다. 앞으로 더 많이 만나 그들에게 잊히지 않는 해설사로 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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