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해" 밭 갈아엎는 영천 포도농가

입력 2016-02-22 21:04:02

수입포도 'FTA 직격탄' 최근 2년간 수익 반토막…지난해 농가 836곳 폐업

영천 북안면 도천리의 한 포도농가가 22일 작은 굴착기를 동원해 포도나무를 뽑아내고 있다. 민병곤 기자
영천 북안면 도천리의 한 포도농가가 22일 작은 굴착기를 동원해 포도나무를 뽑아내고 있다. 민병곤 기자

22일 영천 북안면 도천리 포도밭. 작은 굴착기가 포도나무 뿌리를 걷어 올려 털어내고 있었다. 포도밭 구석에서는 주인 A(83) 씨가 안타깝게 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도농사를 포기하기로 결심한 A씨는 2천200㎡ 규모 포도밭에서 캠밸얼리 품종으로 25년간 농사를 지어왔다. 통상 1년에 600만∼700만원 정도의 수입이 나왔지만 지난 2년간은 300만∼40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올해 농사를 짓지 않고 내년엔 다른 사람에게 빈 밭을 빌려줄 생각이다. 빈 밭을 빌려줄 경우 3.3㎡당 1천∼1천500원 정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A씨의 수입은 연간 100만원 정도로 추락한다.

한'미 및 한'터키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수입산 포도가 넘쳐나면서 포도농가들이 눈물을 머금고 밭을 갈아엎고 있다. 국내 최대 포도 산지인 영천 포도농가 중 5분의 1 가까이가 지난해 폐농을 선언했다. 국내산 포도가 전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영천에서는 지난해 포도농가 836호의 폐업이 확정됐다. 영천 전체 포도농가 5천103호의 16%나 된다. 포도 폐업 면적도 288㏊로 전체 면적 2천328㏊의 12%에 해당한다. 포도 폐업지원금은 노지포도는 ㎡당 5천897원, 시설포도는 ㎡당 8천741원이다. 지난해 영천의 포도 폐업지원금은 175억원에 이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 '2015년도 포도 폐업지원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노지포도농가 3천702호(1천406㏊)와 시설포도농가 681호(269㏊)가 각각 폐업지원을 신청했다. 전체 포도농가(3만4천여 호)의 12.6%가 포도농사를 포기한 셈이다. 국내 포도 폐업지원 신청 면적은 전체 재배 면적(1만5천여㏊)의 11%다.

영천 화남에서 7천㎡ 규모의 포도농사를 짓는 정대식(63) 골벌포도작목반장은 "대부분 포도농가들이 나이가 많아도 가격만 좋으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데 경제성 하락으로 이제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포도 가격은 지난 2년간 폭락했다. 영천 농산물도매시장에서 8월 31일을 기준으로 거래된 포도 평균가격은 5㎏당 2012년 9천200원, 2013년 1만400원, 2014년 6천300원, 2015년 6천700원 등이다. 지난 2년간 포도 가격이 2012년, 2013년보다 평균 27∼35% 낮게 형성됐다.

수입 포도가 영천 등 국내 포도밭에 치명타를 날렸다. 2000∼2014년 포도 수입량은 8천t에서 5만9천t으로 6.5배나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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