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극야의 도시 무르만스크, 시리아 난민 통로

입력 2016-02-16 00:01:00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경북대(석사)·모스크바 국립사범대(박사) 졸업

러시아·노르웨이 국경 무르만스크

시리아 난민 유럽 유입 통로돼 시끌

'도보·차량 입국만 처벌' 법규 맹점

자전거 탄 난민 입국자 수 크게 늘어

2월 초 러시아 출장 중 이틀 짬을 내어 무르만스크를 다녀왔다. 무르만스크는 러시아 북서쪽 바렌츠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북위 68도로 북극권에 가까워 오로라를 볼 수 있기에 많은 여행객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 군사적 요충지라 소련 시절에는 외부인들의 여행이 금지되었지만 이제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로는 서른 시간 넘게 걸리지만 비행기를 타면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많이 자유로워진 러시아 내 다른 도시와 달리 외국인은 예외 없이 국가안전요원이 깐깐하게 여권 검사를 하고 방문 목적을 묻는다.

백야 현상으로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이 도시는 겨울에는 몇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밤처럼 깜깜한 극야가 나타난다. 이곳은 사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 1978년 파리발 서울행 대한항공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여 소련 영공으로 날아들었고, 미사일에 격추된 항공기를 기장이 동체 착륙으로 이곳 무르만스크 연안 호수 위로 착륙시켰다고 한다. 2명이 사망했지만 나머지는 전원 구조되어 핀란드를 통해 무사히 귀국했다니, 수교도 되지 않은 냉전시대였음을 염두에 두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추위와 어둠밖에 없는 이 도시의 유일한 관광자원인 오로라를 보려면 택시를 대절해서 야외로 나가야 한다는데, 그것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단다. 짧은 일정이라 오로라는 보류하고, 시내를 잠시 둘러본다. 무르만스크가 자랑하는 2차 대전 승리의 상징인 알료샤 동상을 보러 갔더니 항구 도시의 바람이 차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최초의 핵 쇄빙선 레닌호와 레닌의 동상이 여전히 건재한 도시, 타임머신을 타고 소련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이곳은, 그러나 더 이상 폐쇄된 항구가 아니다. 북극항로의 중심지로 관심을 끌고 있으며, 가까운 노르웨이 등지에서 휴가를 보내러 온 북유럽인들과 동양인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런데 이곳은 최근 시리아 난민들의 유럽 유입 경로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극지의 도시로 지난해 여름부터 시리아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관광 비자를 받아서 무르만스크까지 온 난민들은 러시아 국경을 넘어 인접한 노르웨이의 키르케네스 등지로 가서 망명을 신청한다. 그들이 애용하는 방법은 자전거로 국경을 넘는 것인데, 지난 가을 이곳에서는 어린이용 자전거까지 동날 정도였다고 한다. 러시아 법으로는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만 있고, 노르웨이 법에는 입국서류 없이 차량 입국을 금지하는 조항만 있는 점을 이용해서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생명을 건 난민선보다는 그래도 육로가 안전하리라는 판단이 수천 명의 난민을 이곳으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소도시 키르케네스에서는 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를 매일 수백 대씩 폐기하고 난민용 임시숙소를 지었다고 한다.

자전거 입국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보니 최근 북유럽에서는 러시아로부터의 자전거 입국을 금지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대외적으로는 겨울에 자전거를 이용한 이동이 위험하다는 이유를 댔다. 정치적 망명에 비교적 너그러운 노르웨이도 지난해 말부터는 난민 유입을 거절하고 있고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은 핀란드는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한다. 터키가 유럽으로 난민을 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처럼 러시아가 제2의 터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무르만스크 호텔과 인적 드문 거리에서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스크바로 돌아오고 나니 외국 신문기사를 인용한 무르만스크발 뉴스가 인기다. 무르만스크 나이트클럽에서 러시아 여자들을 성추행하던 난민 수십 명이 러시아 남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는 것이다. 약간의 영웅담이 가미된 이 뉴스를 정작 무르만스크에서는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극야의 조용한 도시 무르만스크는 이렇게 유럽과 러시아, 그리고 시리아 사이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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