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김진복(75'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지방자치연구소장은 일을 만들면서 사는 사람이다. 공직'대학에서 30여 년을 보내고 은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친다. 지역봉사 차원에서 개인 연구소를 열어 시민 상담에 응하는가 하면 수성구청 민원배심회의 판정관도 맡고 있다.
"평생 일하면서 살았고 한 번도 쉴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집 가훈 역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입니다. 대구극동방송국 남성 합창단에도 나가는데 50여 명의 단원 중에 제가 제일 연장자랍니다."
그는 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경야독한 끝에 37세에 대구보건대 교수로 채용됐다. 그곳에서 4년간 강단에 서다 영진전문대로 옮겼고, 쉰이 넘은 나이에 '한국지방의회의 전문성에 관한 연구'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에게 지방자치는 평생의 연구 주제였다. 1991년 영진전문대 부설 지방자치연구소를 열어 지방의회 의원 연수, 주민자치 교육 및 강연'저술 활동을 하며 한국지방자치 발전에 앞장섰다. 지방에서 최초로 설립된 지방자치연구소는 한국지방자치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김 소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물론 지금도 한국지방자치학회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평생 공부하고 가르치는 삶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청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과 병고로 고교 시절에 1년간 휴학했고, 중퇴해야 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열악한 가정환경 탓에 고아원 총무, 철공소 생활도 했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철공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동사무소를 빌려 '계명야학교'를 열었던 일입니다. 공장에 다니는 소년, 식모살이하는 소녀,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꿈을 잃지 말라며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때 그 학생들도 환갑은 되었지 싶습니다."
김 소장 부부를 만날 때면 환한 꽃밭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워낙 금슬이 좋은 덕분이다. 아내를 각별히 챙기는 그는 각종 모임, 행사나 여행을 갈 때 꼭 부부 동반으로 다닌다.
"누가 팔불출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허허. 젊은 날 문간방에서부터 시작한 고생을 잘 알기에 다달이 나오는 연금도 모두 집사람에게 줍니다. 아주 미미한 보상이겠지만…."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옛말도 틀리지 않아 그의 아내 역시 "남편이 고생을 많이 했다. 저는 칭찬 받을 게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빨간 티셔츠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는 인도 음식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그를 만날 때면 카레를 종류별로 시식하는 호사를 누린다. 사람은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정이 들고 소통한다.
"건강하고, 아내가 곁에 있고, 쓸 만큼의 약간의 돈과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네 가지를 모두 갖고 있어 다행입니다." '지방자치'보다 '가정자치'를 먼저 이룬 자상한 남편인 김 소장은 카레를 더 들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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