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만·어 世事萬語] 할랄

입력 2016-02-03 00:01:00

인도에 사는 소만큼 팔자 좋은 동물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소로 환생하기도 한다고 믿는 인도인(힌두교도)들에게 소는 사람이나 진배없다.

그렇다고 인도에 사는 모든 소들이 상전 취급받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는 무슬림(이슬람교도)도 있는데 이들에게 소는 그저 가축이고 식용 대상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나쁜 동물이 있다면 '무슬림 구역으로 길 잘 못 들어선 인도 소'가 아닐까 싶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다. 무슬림 구역에서 길러졌다가 힌두교도 구역으로 넘어간 돼지 역시 불운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지만 힌두교도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의 음식 금기는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코란과 율법에 따라 금지된 음식을 '하람'(Haram)이라고 부르며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돼지고기, 동물의 피, 자연사한 동물 고기, 썩은 고기, 잔인하게 도축된 고기, 야생동물, 곤충(메뚜기 제외) 등은 식용 금지 대상이다. 술과 마약도 물론 안 된다.

무슬림들은 식용 가능한 음식을 '할랄'(Halal)이라고 부른다. 고기의 경우 이슬람식 도축 방법을 거친 것만 할랄이 될 수 있는데 그 절차가 까다롭다.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짐승의 머리를 눕히고 '알라의 이름으로'라는 기도를 한 다음, 단칼에 목을 치고 피를 모두 빼낸다. 과일·채소·곡류도 첨가물이나 항생제 없이 자연상태에서 재배된 것만 할랄이 될 수 있다.

할랄식품 시장은 세계 식음료 시장의 15~16%까지 성장했다. 할랄식품은 생산·처리·유통의 인증 기준이 엄격한 까닭에 웰빙음식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할랄식품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정부는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안에 할랄 도축장을 건립하고 추이를 봐가며 할랄식품단지 조성을 결정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이 순조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할랄식품단지가 조성되면 무슬림들이 대거 들어올 것이고 우리나라가 이슬람국가(IS) 테러의 위험지대가 될 수도 있다는 유언비어마저 나돌고 있다. 정부는 반대 목소리가 근거 없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증)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할랄 도축장을 둘러싼 국민의 걱정을 단지 제노포비아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할랄 도축장 설립은 이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매우 신중하고 투명하게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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