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예술의전당 사진전 준비 장국현 씨

입력 2016-01-30 00:01:00

"제 작품이 뜻깊은 큰 사업 위해 쓰인다면 조금이라도 속죄가 될까요…"

장국현 사진작가가 노란 산수유꽃과 조화를 이룬 거송 사진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장국현 사진작가가 노란 산수유꽃과 조화를 이룬 거송 사진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세 통의 전화와 두 통의 '연락 부탁' 문자. 그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생각보다 깊이 칩거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전화번호까지 바꾸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을 통해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장국현(74) 사진작가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막상 약속을 잡고 보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여전히 여러 각종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고 명백한 형사처벌(산림보호법 위반) 신분인 사람. 그런 그가 새로 속죄의 마음으로 벌인다는 전시회(천하걸작 한국 영송 장국현 사진전)도 그 진의(眞意)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현실에서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많은 회의가 밀려들었다.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약속장소로 나갔다.

◆지역민'독자에 사죄로 말문 열어

"2011년 11월, 2012년 봄, 2013년 봄, 세 차례에 거쳐 울진군 소광리 산림보호구역에서 금강송 11그루, 활엽수 14그루를 무단 벌채한 것 모두 맞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뒹굴고 작업해 오던 공간에서 저의 사욕(私慾)에 의해 이런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데 대해 독자 여러분들께 사죄를 구합니다."

그의 인터뷰 첫 일성은 지역민'독자에 대한 사죄의 말로 시작되었다. 2014년 7월 법원의 약식기소 판결 이후 언론에 거의 첫 노출이었다.

"무려 여섯 번의 르포, 고발 기사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런데 아픈 만큼 그 울림과 깨달음도 컸어요. 사건 이후 첫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은 생각이 겹쳤지만 한걸음에 달려 나온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사회와 언론의 온갖 질타와 뭇매를 피해 그가 숨어든 곳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소나무 곁이었다.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되어버린 처지에서 가족의 얼굴을 대하기도 불편했다고 한다.

"무작정 강원도로 들어갔습니다. 용평에 조그만 거처를 정해놓고 산속으로 소나무만 찾아다녔어요. 일 년여 동안 야생동물처럼 하루 한 끼 생식만 하며 숲을 다녔어요.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죠. 이 과정에서 고송(古松), 초송(超松), 신송(神松) 들을 만났고 이 영송(靈松)들을 차곡차곡 렌즈에 담았습니다. 세계에서 멋진 소나무는 한국에 다 있어요. 작가라면 이런 소나무를 렌즈에 담기를 모두 소망하지만 한겨울 영하의 추위나 야생동물 습격 위협 속에서 생사를 걸고 이런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소나무 보호수는 약 200여 그루, 천연기념물은 40그루쯤 된다고 한다.

장 작가는 이제까지 약 500여 그루의 소나무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 산속 '잘생긴' 소나무의 80, 90%는 다 찍었다고 자신한다. '소나무 기록'을 향한 그의 대장정은 앞으로 10년쯤 더 진행될 것 같다. 칠순의 나이에도 아직은 건강에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서 전시회 제안

강원도에서 소나무 사진 작업 앨범이 1권, 2권 쌓여갈 무렵 그는 잡지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강원도 소나무 작업'을 높이 평가한 '미술과 비평'에서 전시회를 제안한 것이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내가 법원 판결을 받은 지 1년도 안 됐는데, 사회 여론이 너무 안 좋고 무엇보다 흠결 많은 나의 작품을 걸면 당신들 공직 생활에도 누가 된다고 말렸어요. 한편으로 사회의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제 작품을 평가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예술의전당이라는 데 흔들렸다고 말했다.

"전시회 장소가 세계적인 화가들 작품만 전시한다는 '예술의전당'이었고 순번도 반 고흐, 세잔, 모네전에 이은 전시여서 솔직히 욕심도 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대구의 한 인사로부터 대구 범어대성당에 파이프오르간이 없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전시회를 파이프오르간 성금 마련전(展)으로 삼았으면 좋지 않을까' 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작품을 더이상 팔지 않겠다는 약속도 잠시 접었다.

"사실 전 그 '사건' 이후 한 점의 작품도 팔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 원칙을 굽히기로 했습니다."

◆"소나무 다큐 만들며 속죄할 것"

경찰 수사 이후 장 작가는 세상에 대한 마음을 모두 비웠다.

금강송을 팔아서 장사한 몰염치한 작가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으로 나올 염치도 발 딛고 나설 자리도 없었다. 이때 포근하게 작가를 지탱해준 것은 소나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이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50년 이내 소나무 개체 수가 반으로 줄어들고 100년 이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쯤 후손들이 제 작품을 통해 소나무를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이번에 우연히 속죄의 전시 기회를 얻어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나머지 빚은 소나무 다큐멘터리 작업에 전념하며 평생 갚아 나가겠습니다. 소나무는 저에게 70년 인생의 분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50년 가까이 나무에 탐닉하다 보니 그 집착에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참회의 전시회'를 통해 희생당한 소나무와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들에게 속죄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 '결점' 많은 작가에게 '속죄 전시회' 기회 준 여러분들께 감사

장국현 '예술의전당' 전시회

"이렇게 결점 많은 사람의 작품을 평가해 주고 전시회를 열어 준 미술과 비평, 그리고 예술의전당 측에 감사드립니다." 장국현 작가로부터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소감을 들어보았다.

-전시회는 언제 열리나.

▶4월 12일부터 26일까지(25일은 휴관) 전시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데 이 장소는 반 고흐, 세잔, 고갱 같은 세계적인 화가 작품만 전시하는 공간이다. 국내 작가 작품으로는 내가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번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이 출품되나.

▶지난 1년 동안 강원도 대관령, 오대산, 설악산에서 사진 작업을 했다. 절벽에서 아슬아슬하게 로프를 타며 사선(死線)을 여러 차례 넘었다. 외줄에 매달리다 배낭이 수십m 절벽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다. 이렇게 작업한 51점이 새롭게 선보인다. 또 지난 파리 전시회 때 현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13점도 함께 나온다.

-전시 작품 규모가 상당히 크다고 들었다.

▶소나무의 느낌과 기상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실물 크기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승송, 신선송, 신룡송 등은 여덟 폭 병풍 크기인 길이 6.4m 규모다. 상당수가 1m 이상 실물 크기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또 전시회에 맞춰 사진첩(40×32㎝)도 출판된다. 국내에서 가장 큰 판형이라고 들었다. 제작에 필요한 대관비, 출판비 등은 나와 아들이 낸다.

한상갑 기자

◆장국현 작가 '금강송 벌채' 사건은=2014년 7월 장 작가는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산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울진군 소광리 산림보호구역에서 금강송 등 나무 25그루를 무단 벌채한 혐의다. '사진 구도를 해친다'는 이유로 주변 나무를 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산림 파괴범에게 겨우 사진 1장값 벌금은 너무 약하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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