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 안 사요?"
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이 뜬금없이 묻는다. 친구 아빠는 주식 대신 금 사는 데 열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돌잔치 때 받은 금반지를 처분한 걸 알고서?' 순간 뜨끔해진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 말씀을 빌려 훈계를 하고 나서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금'에 관심을 둔 것을 보니 가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국제 금값이 약 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다른 투자자산에 비해 값이 하락한 금을 다시 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테크 열풍은 광풍 수준이다. 한국 금 거래소의 경우 은행, 쇼핑몰 등에 골드바를 공급하는데 지난해만 총 5천415㎏을 판매했다. 이는 1년 전(1천383㎏)보다 약 4배나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7월부터 골드바를 판매한 대구은행의 경우도 지난해 연말까지 35㎏(17억원)이 넘는 골드바를 판매하는 등 지역에서도 금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때아닌 '금 사랑'이 지역경제의 불안감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금에 대한 관심은 우리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곤두박질친 금리와 주식 폭락'부동산 버블 붕괴 조짐 등으로 투자처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금 시장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저유가에 따른 경제 불안, 중국 경제 둔화와 증시 폭락에다 북한의 수소탄 실험 등 온갖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대구경북 경우 유가 하락과 위안화 평가절하 등으로 올해 수출액이 5조원 이상 감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지역의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부실위험가구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 역시 1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지역민들이 100만원을 벌 경우 18만원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저소득층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들은 88만원을 빚 갚는 데 사용 중이다. 지역 가계와 경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이다.
금은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가 되어왔다. 외환 보유액과 함께 한 나라가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안전판'으로 인식되어서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금 보유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잇따르기도 했다.
실제 금은 우리 경제를 살리기도 했다. 1997년 IMF 위기 때 도탄에 빠진 나라 경제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금'이었다. 아기 돌 반지와 결혼 예물, 우승 트로피와 십자가 목걸이까지….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서민들의 금 모으기 행렬은 정말 끝도 없었다. 전국적으로 350만 명이 참여해 약 227t의 금을 모으는 기적을 일으켰다. 금액으로 21억3천만달러에 달했다. 현재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보다 2배 넘게 많은 금이 장롱 속에서 나온 것이다. 덕분에 IMF를 무사히 졸업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또다시 경제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금이 과연 우리 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금값의 경우 변동 폭이 커서 투자 위험이 따르고 유동화가 어려운데다 금 보유에 따른 실질적인 이자가 없어 기회비용이 크다. 더구나 달러가 강세로 돌아설 경우, 금의 가치는 자연스레 떨어질 수도 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이번에도 금이 여전히 안전한 투자처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지 최영 장군께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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