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에게 패한 왕건의 도주로, 사람 흔적 드물어 '산해의 맛'
885.60㎢ 대구 분지는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와 성삼비앞(성암산-삼성산-비슬산-앞산)이 내려준 선물로 불린다. 이 두 산맥을 따라 대구의 역사가 펼쳐졌고 문화가 깃들었다. 산이 품은 건 또 있다. 바로 크고 작은 수많은 산이다. 300m급 산과 봉(峰), 영(嶺)은 대충 합쳐도 50곳이 넘는다.
그런데도 시민들은 대구의 산 하면 팔공산, 앞산, 와룡산, 용지봉 정도만 기억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지역의 숨겨진 산들을 찾아내 펼쳐낼 것이다. 때론 우리 동네, 마을 골목 뒷산부터 때론 시군 경계지역 숨은 명산까지 답사 기록을 지면으로 옮겨 볼 생각이다.
◆초례봉 명성에 가려진 '숨은 명산'
팔공산 동북쪽 끝자락에서 맥을 솟구친 초례봉이 고도를 낮추며 산자락을 살짝 떨어뜨린 구간이 있다. '초낙요능'(초례봉-낙타봉-요령봉-능천산) 능선이다.
이 중 요령봉-능천산 구간은 같은 동구에서 산군(山群)을 이루었음에도 환성산, 초례봉의 명성에 가려져 마을 주민이나 마니아를 제외하곤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대구의 '비탈진 곳'은 대충 올라봤다는 기자도 최근에야 답사를 했을 정도로 존재감이 흐릿했다. 산이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대략 두 가지 경우다. 소문난 전망을 갖지 못했거나 교통이 불편한 경우다. 그러나 직접 올라 본 대암봉-요령봉-능천산 코스는 교통도 편했고 조망도 괜찮았다. 동구 안심이 숨겨둔 명산 요령봉, 능천산을 다녀왔다.
◆대암봉 생구암, 경주 최씨 발복 근원
옻골마을 입구엔 아담한 비보(裨補)숲과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풍수에 문외한이지만 마을 뒷산의 거북이(생구암)와 암릉 탓이 아닌가 한다. 거북이는 습성상 물이 필요하고 바위는 불(火)이니 물로써 기운을 누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등산로는 비보숲 바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소나무숲길을 잠시 오르면 해발 250m 지점에 생구암(生龜岩'거북바위)이 나온다. 마을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지세 덕에 경주 최씨 후손들이 발복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거북바위에서 20분쯤 진행하면 대암봉이 나타난다. 옻골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조그맣게 단장한 정상석을 찍고 송림(松林)을 따라 내려서면 곧 옻골재에 이른다. 불과 20, 30년 전만 해도 이 재는 옻골과 평광동을 이어주던 산속의 교통로였다. 잡초에 우거진 채 효용을 잃었던 이 고개가 등산이 활성화되면서 다시 옛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요령봉에 서면 안심들 조망 한눈에
옻골재에서 직진하면 제법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지고 20분쯤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체력이 달리는 경우 '옻골' 쪽으로 난 표지판(탈출로)을 보고 진행하면 경주 최씨 종가, 버스종점으로 떨어진다.
요령봉, 능천산을 꼭 보겠다는 산객들은 매여동 쪽으로 직진하면 된다. 중간에 만나는 '깨진 계란바위'도 재미있다. 집채만 한 바위가 계란을 칼로 자른 듯 놓여 있는 모양이 관심을 끈다.
매여동 쪽으로 가는 길을 잡아들어 20분쯤 오르면 넓은 바위 지대가 나오며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요령봉(搖鈴峰)이다. 바위가 방울 모양으로 갈라져 이런 이름을 얻은 듯하다.
뒤로 팔공산 주능선과 앞쪽으로 안심들, 멀리 성암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요령봉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가 있는데 역시 옻골로 진행하는 탈출로다. 능천산을 오르려면 매여동 쪽으로 좀 더 직진한다.
◆여대익 선생 효심 서린 능천산
이 코스에서 주봉은 역시 능천산(綾泉山)이다. 요령봉에서 30분쯤 진행하다 상매동 방향으로 접어들면 380m봉이 나타난다. 능천산이다. 대암-요령봉은 그 나름 유명세를 탄 덕에 표지판이라도 얻어 달았지만 능천산은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위치조차 확정받지 못하고 있다.(몇몇 지도에서 위치가 다르게 표기)
표지판도 없이 겉돌던 이 산은 '산 명패 달아주기' 산꾼 김문암 씨를 만나 겨우 정상석을 얻었다. 산 이름에 '천'(泉) 자가 들어간 것은 이곳 출신 여대익(呂大翊'1681∼1742'조선 후기 학자)의 시묘살이 효행에서 근거한 듯하다. 전설에 의하면 여 씨가 식수가 없어 곤경에 처하자 하늘에서 샘을 내려 효행에 보답했다고 한다.
오늘 소개한 대암봉, 요령봉, 능천산은 '초낙요능'의 한 능선이다. 주능선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산이다. 역사적으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주살을 피해 도망치던 도주로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던 경주 최씨의 한 문파가 둥지를 튼 가문의 터전이기도 했다.
산행 틈틈이 이런 역사적 교훈들을 떠올린다면 가쁜 숨이 조금 누그러들지 않을까 한다.
※TIP
◆교통=도시철도 1호선 방촌역에서 내려 동구3번으로 환승해 옻골 경주 최씨 종가에서 하차한다. 주말엔 버스 운행이 뜸해지니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자동차로 올 경우 동구 부동 해안초교를 거쳐 바로 위 경주 최씨 종가로 오면 된다.
◆주의할 점=등산객들의 통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등산로가 선명하지 않다. 주변 산길에 익숙한 가이드를 동반하거나 흐릿한 길은 접어들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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