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m 벽에 희고 붉은빛 얼룩…선 드로잉 속 말·새·나무·얼굴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의 올해 첫 초대작가는 서양화가 박철호다. 박 작가는 계명대 서양학과와 교육대학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와 서울,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순환-깃'이란 제목의 설치 작품이다.
새로운, 다른 미술의 가능성을 찾는 미술가의 태도는 생경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긴장과 개척자의 더듬이 같은 무엇이 몸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깨어나게 한다. '순환-깃'에서 박 작가는 잊히거나 사라져 가는 사건, 혹은 사물의 기억처럼 선명하지 않고 흐려진 이미지를 겹치고 쌓고 이어붙이는 행위를 통해 깊이 잠들어 있는 감성을 잡아 흔들어 깨우듯이 미술의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갈기갈기 찢겨 끊어질 듯 이어진 물결 같은 선 드로잉 속에서 관람자가 말이나 새, 나무, 얼굴, 총, 폭탄, 군함 등의 이미지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가능성으로서 '깃'에 관한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5.2m 높이 전시장 벽면에 흰빛과 붉은빛의 '깃'을 연상하는 얼룩이 가득하다. 박 작가의 '깃'은 바람결, 혹은 파장과 같은 '빛의 흐름'으로 공간 전체에 스며들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겹겹이 포개지면서 아마포(亞麻布)의 섬유질 표면은 물론 그 위를 자유분방하게 그은 드로잉 선과 획에서 자연 상태의 모습과 긴장, 기억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이 기억은 박 작가의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작가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저의 작품은 순간과 영원, 절망과 희망, 전쟁과 평화의 대칭적 순환 과정을 나타낸다"고 했다.
벽면 한쪽엔 1999년 작품 '절망과 희망'(Despair & Hope)이 걸려 있다. 1997년 비오는 어느 날, 박 작가가 가족과 떨어져 홀로 머물렀던 뉴욕의 작업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흰 깃 비둘기 한 쌍의 다정한 몸짓에서 위로와 희망의 절실함을 발견하고, 그 옆 건물 창틀 위에 웅크려 앉은 비둘기 한 마리의 젖은 날갯짓에서 자신의 처지를 견주며 절망을 되뇌었던 기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뉴욕에서의 기억과 연결된 새의 형상을 통해 인간 생명의 위기를 경고한 박 작가의 대표작 시리즈이다. "'새' 시리즈는 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실존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명체의 본질적인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산문화회관 정종구 큐레이터는 "박철호 작품은 '본연' 그대로의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는 리얼리티"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3월 13일(일)까지 봉산문화회관 2층 제4전실에서 열린다. 053)661-3500.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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