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러시아의 새해맞이 풍경, 야누스의 두 얼굴

입력 2016-01-12 00:01:00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1일부터 7일까지 성탄절·새해 긴 연휴

테러·경제·환율 등 힘든 형편에도 낙관

1월은 과거를 잊지 말되 미래를 보는 달

나쁜 일 모두 보내고 희망으로 새해인사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정교 구력에 따라 1월 7일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 그러다 보니 새해부터 1월 7일까지 이어지는 긴 휴일은 모든 러시아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기간이다. 종교가 금기시되었던 공산주의 시절의 영향인지 러시아인들은 특히 새해를 가장 좋아하는 명절로 꼽는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진 않더라도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으리라. 소련시절부터 러시아인들은 크리스마스트리 대신 '새해 트리'를 장식했다. 지금도 12월이 되면 각 도시의 광장은 화려한 새해 트리로 장식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서리 할아버지'라 불리며, 푸른 옷을 입고, 루돌프 사슴 대신 '눈 아가씨'라는 손녀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러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새해맞이 풍경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새해맞이 불꽃놀이 행사를 보러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들, 가까운 친구들끼리 12월 31일 밤부터 집에 함께 모여서 먹고 마시며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특히 이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귤과 올리비에라는 샐러드였다. 이 역시 물자가 부족했던 소련 시절의 영향이었다. 소련 시절 북국에서 귤은 대단히 귀한 과일이었고, 새해는 귤을 수북이 쌓아놓고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프랑스 요리사의 이름을 딴 샐러드 올리비에는 잘게 썬 삶은 감자와 당근, 고기 등을 완두콩과 섞은 후 마요네즈에 버무린 소박한 음식으로 새해맞이 식탁의 상징과도 같았다. 축배를 들 샴페인과 보드카 역시 신년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들은 자정 5분 전 대통령의 신년사를 듣고, 크렘린 시계탑의 초침이 12시를 향해가는 것을 세고, 자정 종소리를 들으며 건배를 한다. 신년 행사를 보러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지에게 안부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고, TV를 보면서 집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매년 예외 없이 소련 시절 만들어진 멜로 영화 를 질리지도 않는지 보고 또 본다. 똑같은 거리 이름과 건물 때문에 새해 전야 우연히 다른 집을 찾아간 남자와 그 집 여주인이 사랑에 빠지는 이 영화는 1970년대 중반 제작된 이후 새해마다 방영되고, 최근 속편의 속편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도 많이 봐서 영화에 나오는 노래와 대사까지 외울 지경인데도 러시아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이 영화에 열중하곤 했다.

올해도 예외 없이 모스크바 시간으로 12시가 되자 지인들의 새해 축하 인사가 속속 전해져왔다. 유가 하락, 서방의 경제 제재, IS의 테러 위협, 폭락한 환율로 힘든 형편이 분명한데도 메시지는 낙관적인 전망과 유머로 가득하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서 모아도 별 소용이 없다며, 일 년치 월급으로 이탈리아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사실 지난해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이 테러와 사고로 점철된 한 해였다. 그리고 2016년 역시 낙관적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되지 않고 있다. 시리아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유럽 각국에서는 다양한 갈등과 충돌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과 유가 하락, 중국발 경제 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 역시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푸틴은 먼 곳, 특히 전쟁터인 시리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군인들에게 비장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새해맞이 인사에서 러시아인들은 지난해의 나쁜 일들을 다 흘려보내고, 새해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으로 맞이하길 바란다는 두 가지 메시지를 보낸다. 서양에서 새해의 시작인 1월은 로마의 신 '야누스의 달'을 의미한다. 하나는 과거를 보고, 하나는 미래를 보는 두 얼굴의 신 야누스는 또한 문(門)의 신이기도 하다. 과거를 잊지 말되 미래를 바라보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기억하며, 전시에는 열어두고 평화로울 때는 닫아두었던 야누스 신전의 문이 늘 닫혀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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