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전기운(參戰氣運)
전운(戰雲)의 악화로 철수작전이 연속되던 1950년 8월. 모두가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지역으로 몰려든 그때. 무기휴학에 들어간 학교에서 긴급 비상소집이 있었다. 학업이 계속 되는 줄 알고 학교로 달려간 교정에는 예상 밖에 군용 트럭이 6대나 서 있었다. 이상하다는 예감을 하면서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육군 중령 한 사람과 대위 세 사람이 학교 교무과장과 함께 한담하고 있다가 교실에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 모두 운동장에 집합하라고 했다. '무엇 때문일까?' 생각하면서 운동장으로 다시 나가니 모두 중학교 3년생 이상자만 200명 정도 모여 있었다.
나도 나의 학반을 찾아가 줄 안에 들어서 있었다. 얼마 후 교실에서 보았던 군인들이 우리 앞에 서더니 계급이 제일 높은 중령이 단위에 올라가서 학생들을 향해 현 전황을 설명했다.
"불법 남침을 당한 아군은 전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대구의 문 앞까지 철수했다. 현재 전황은 위급하고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으나 결코 우리가 패하지는 않는다. 후방에는 미국이 전력을 정비하고 참전할 계획이라 우리 편의 전세회복은 시간문제이니 불안해 할 것은 없다. 예로부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니 우리의 고경도 불원 해소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니 뒤에 미국과 우방 여러 나라가 지원할 것으로 믿고 우리는 손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조국은 피 끓는 젊은 청년들을 부르고 있다. 조국이 있어야 학교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 어찌 이러한 조국의 위경(危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피 끓는 젊은 혈기를 조국에 바쳐보지 않겠는가? 정의를 사랑하고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군! 우리 군을 믿고 조국에 몸바치고자 하는 제군들의 애국정신을 우리 군은 높이 찬양한다. 이제라도 우리 군을 믿고 우리 군과 함께 조국에 몸바치고자 하는 학생은 우리 군에 들어와도 좋다. 우리 군과 함께 조국수호에 한 몸을 바치려는 학생들을 우리 군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하던 그 중령은 단 아래 있는 교무과장과 무슨 말을 주고받더니 다시 음성을 높이면서 "학생 제군들이 애국하는 기회는 지금이다. 이런 기회가 마냥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을 믿고 군을 지원하는 자는 따로 이 옆에 줄 서라! 좋은 기회이니 이 기회를 마다하고 군을 신뢰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적군이 있는 북쪽으로 가라! 우리를 신뢰치 않고 위경의 조국이 싫으면 적진으로 가라!" 분격한 중령의 소리는 힘차고 강경했다.
학생들은 모두 앞, 뒤, 옆을 살펴가며 옆줄로 옮겨서고 있었다. 전지를 향해 날아가는 포성은 은은히 교정을 스치고 있을 때 한 사람 두 사람의 학생들은 줄을 옮겨서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중령은 힘찬 목소리로 "훌륭하다! 장하다! 어느 학교보다 이 학교 학생이 훌륭하구나!" 하며 격려 섞인 재촉이 이어졌다. 옆줄로 옮겨선 학생들은 그대로 뒤편의 트럭으로 옮겨 타서 육군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그날 비상소집에 집결했던 학생은 이렇게 해서 전원 군에 들어가게 되었다.
2. 3일간의 단기훈련(短期訓練)
군 트럭이 도착한 곳은 대구 수성구의 범어동에 자리한 대구농림중학교 교정이었다. 당시의 학교와 기관 건물은 모두 군에 징발되어 있었다. 이 학교가 육군 제1훈련소로 되어 있어 징집되어 온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동원되어 간 우리 일행도 이 학교에서 훈련을 받기로 된 것 같았다. 트럭에서 내린 우리는 어느 기간요원의 안내대로 교실에
들어가서 명부를 작성하고 여기서 군적의 기본이 되는 군번을 받았다.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은 불러주는 군번을 쉽게 외울 수 있었지만, 농촌에서 농일 만 하다가 모병 되어온 사람들은 쉽게 자기 군번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밤이 깊어가니 고향집 생각도 나고 대구에서 유숙하던 하숙집에 연락도 못 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소집되어 온 그날은 훈련소 내무반(교실)에서 뜬눈으로 새우고 그 이튿날 새벽 4시 기상 나팔소리에 일어나 연병장에서 일조점호를 했다. 아침 식사는 오전 6시까지 소금국과 함께 하고 7시에 연병장에 모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기초훈련인 보도훈련(步度訓練) 2시간과 M1 소총의 분해결합 2시간을 마치고 연병장에서 사격훈련 5시간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다. 그 이튿날은 M1 소총의 사격요령을 교육했는데 주로 격발요령과 사격자세를 교육받았다. 사격자세는 서서 쏴, 앉아 쏴, 엎드려 쏴 가 있는데 주로 엎드려 쏴 자세와 격발요령 실탄의 장전법 등을 배우며 하루를 넘겼다.
다음날은 실탄 장전과 사격훈련으로 하루를 마감했는데 사격은 M1 소총 8발의 실탄을 다 쏘지 않고 5발만 쏘고 다음 사수에게 넘기도록 지시되었다. M1 소총 8발을 장전해서 다 쏘아 버리면 총의 노리쇠가 자동으로 후퇴해 다음 실탄을 장전케 되는데 5발만 쏘고 다음 사수로 인계되니 노리쇠의 자동후퇴 기능을 감지 못하고 사격교육을 끝내니 전선으로 배치되는 신병들은 M1 소총의 기능 자체를 모르고 참전하게 됐다. 다수의 신병이 참전하고 있는 전선고지에서는 전투 중 노리쇠 자동후퇴 기능을 모르고 고장인 줄 알고 당황하는 촌극이 많았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도 3일간의 단기훈련을 마치고 전선에 배치되었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니 웬 소고깃국 냄새가 군침을 삼키게 했다. 식사 때마다 소금국으로 식사하던 우리에게 그날만은 소고깃국이 배식 되었다. 나의 국그릇에도 두 개의 고깃덩어리가 담겨 나왔다. 모두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5분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모두 즐겁게 지난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을 때 갑자기 트럭 소리가 가깝게 들리더니 연병장 안으로 트럭 6대가 들어왔다. 교관은 급히 다가와서 모두 연병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훈련을 다른 곳에서 하려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모두 연병장에 모여서 보니 모두 훈련소장의 훈시를 듣고 있었다. 훈련소장은 모이는 우리에게 정다운 말로 "너희의 소속은 1사단이다. 전원 1사단으로 출발하니 모두 건강하게 상관의 군령(軍令)에 복종토록 하라" 하고 옆에 있는 트럭에 분승(分乘)토록 지시했다. 이윽고 조교로부터 군번 순에 따라 트럭에 승차토록 지시되었다.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1사단으로 간다는 것만 예지(豫知)하고 모두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생각하니 저녁의 소고깃국이 마지막 석별을 알리는 신호였던가 싶었다.
3. 불타는 격전장(激戰場)으로
트럭에 올라탄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입을 닫은 채 포성이 작렬하는 전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차가 팔달교를 지날
때 다리 밑의 포진지에서 발포하는 포성에 놀라 귀를 막고 머리를 숨기려고 발버둥치는 자가 많았다. 차 앞에 타고 있던 현역 상사는 "괜찮다. 아군이 쏘는 포성이야!"라며 위로해 주었고 팔달교를 넘어선 차는 포성이 가까워지는 전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지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거칠어져 갔고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 소총이 발사되는 소리 등이 차에 탄 신병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어둠이 깊어지고 전쟁이 가열되는 전선을 가까이한 1사단 사령부에 도착했다. 사령부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소재 동명국민학교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보충되는 신병들은 이곳에서 모두 하차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1사단 휘하의 각 연대 인사담당 상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훈련병들은 군번 순서대로 작성된 명부의 호명대로 소속이 정해졌다. 공교롭게도 우리 일행 중에 피난 온 3형제가 함께 와서 한 곳에 배치된 기현상도 있었으나 사단의 작전참모는 한 형제가 한 곳으로 배치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부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기어이 다른 부대로 분리 배치했다.
피가 통하는 이들 3형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면서 형을 중심으로 한 자리로 뭉쳤다. 기간 사병의 눈을 피해가며 자리를 바꾸어 3형제가 한 부대로 배치되었다. 서로 손을 잡은 채 한 줄에 앉아서 기다렸다. 부대별로 분리시켜가며 차에 오르게 하는 기간요원의 지시대로 차에 오르니 차는 시동을 걸면서 출발했다. 어둠이 내린 야음을 해치고 차는 북쪽으로 달려갔다.
차가 달리는 구안도로의 주변에는 험준한 산이 눈앞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사이에 차는 소야현(所也峴)을 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총성과 포성은 점점 가까워진다.
차 옆을 스치는 밤 공기는 코를 자극(刺戟)해 왔다. 인마(人馬)의 썩은 악취(惡臭)가 코를 막게 하고 아득히 쳐다보이는 산정(山頂)에는 부단한 총포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 안의 기간병은 "여기서부터는 전선(戰線)이다. 총성과 포성에 놀라지 마라!"라고 했다. 이윽고 차가 조용히 멈춘 곳은 칠곡군 내의 가산면 소재지였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호명하는 대로 갈라서니 그곳이 본인들이 소속된 부대였다. 나는 300명의 일군(一群)과 함께 12연대 1대대로 배치되었다. 대대 인사담당 상사와 함께 다들 트럭에 올라 5분을 달리니 그곳이 대대본부가 위치한 가산면 다부리였다. 하차한 우리를 향해 인사담당 기간병은 "여기서 전지는 멀지 않다. 너희가 서 있는 곳을 제외한 다른 곳은 모두 지뢰가 매설된 곳이니 다른 곳에 발길을 들이지 마라!"라고 경고했다.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밤을 새우기로 하고 옆 사람을 살펴보니 모두 기가 죽어 있었고 주변에서 흘러드는 악취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필자 약력
- 황인발(84)
- 전 경북도 국제교류계장
※삽화: 이영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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