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배우도 가상의 상대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는 쉽진 않았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최민식(53)은 내심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100% 컴퓨터 그래픽으로 호랑이 'CG 김대호 씨'(최민식은 이렇게 표현했다)와 연기를 해야 하는 건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마지막 호랑이 대호와 명포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대호'에 참여하면서 그가 느낀 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표현된 호랑이 대호다. CG 완성도를 높이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돈이 투입됐다.
최민식은 촬영 내내 의심했지만, 완성된 호랑이를 보고는 만족했다. "상대역 없이 연기한다는 게 사실 맥이 빠지긴 한다. 박훈정 감독의 표현처럼 '맨땅에 헤딩한다'는 느낌이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고 연기 호흡을 맞춘 대호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랐다. 총 맞았을 때 내는 가쁜 호흡이라든지 '컥컥' 대는 소리의 느낌 등등 섬세함이 살았다. 의심해서 미안했고, 연기를 잘해 고마운 마음이다. 영화제 신인상 후보로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다."(웃음)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에 최민식은 언짢아하지 않았다. "비중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 정도면 많이 나온 것 아닌가? 이 영화는 대호의 절대적 존재감이 필요한 영화였다. 우리는 그저 대호를 둘러싼 인물들일 뿐이다. 한 신이건, 두 신이건 각 인물의 연결고리와 개연성만 이어지도록 나오면 됐다."
지난해 1천700만 관객을 가슴 벅차게 한 장군이었던 최민식은 이 영화에서 무력해 보이는 사냥꾼이 되었다. 기개는 여전한 듯한데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인다. 조선 최고의 '명포수'였다는 남자. 무슨 이유인지 더는 총을 들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 산나물과 약초를 캐며 근근이 삶을 지탱한다. 그가 맡은 천만덕은 강렬하기보다는 애잔하고 처연하다고 표현해야 하는 남자다. 물론 결국 그가 총을 들었을 때는 그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극 초반 잠깐 사냥꾼 시절의 모습이 나오지만 천만덕의 시작은 총을 잡지 않은, 총을 버린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부터다. 천만덕에게서 옛날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으면 했다. 그들은 속정은 깊은데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요즘에야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하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아버지들에게는 그 표현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그런 모습을, 또 산사람으로서는 교육을 많이 받진 못했으나 산에 대해 고마움과 예의를 아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최민식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봤으면 하는가?"라며 미심쩍어하는 반응을 보이자 한마디 했다.
"이 영화가 이런 의도가 있고 저런 메시지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제작진이 관객의 감상 폭을 강요하게 되는 거다. 관객이 느끼는 감성은 각자가 다 다르다. '대호'를 보고 '재미없어!' 하면 상처를 받긴 하겠지만, 관객이 하품하고 잘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라면 우리가 진단할 필요는 있지만 소재나 주제의식까지 대중이 싫어한다고 해서 후회해서는 안 된다. 맛있으면 먹는 거고, 아니면 뱉는 게 대중문화다. 관객에게 '내가 하는 얘기가 최고다. 왜 무식하냐. 못 알아듣느냐?' 하면 비극의 시작, 불행의 시작이다."
그는 극 중 복수심에 불타는 다른 포수 구경 역의 정만식과 천만덕의 아들로 나오는 성유빈에 대한 칭찬에는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최민식은 "사석에서 만났는데 구경 역할은 정만식이 딱 맞다고 느껴 감독에게 추천했다"고 했고, 성유빈에 대해서는 "어린 친구가 아직 관습에 젖지 않아서 솔직하다. 연기도 잘했다"고 칭찬했다.
"각진 턱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선 굵은 정만식을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언젠가 꼭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이번이었다. 사석에서 술만 엄청나게 마시는 게 아니라 자연인 아무개가 느껴질 때가 있다. 강동원 같은 친구도 여리고 예쁘게 생겼는데 술 마시면 경상도 남자더라. 술자리에서 여러 가지가 보인다. 유빈 군은 가수 서태지 뮤직비디오에도 나오는 등 연기 경험이 많더라. 감독의 디렉션을 자기한테 맞게 소화해서 표현한다. 내가 어떻게 하라고 얘기한 건 없었다. 본인이 알아서 연기했고, 난 그냥 유빈이의 눈높이에서 친구가 되려 했다."
최민식은 지난해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에도 출연했다.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강조했다.
"'루시'는 너무나 소중한 추억, 좋은 경험이 됐다. 꾸준히 한 분야 일을 하니 '그랑블루' '레옹' 등을 만든 뤽 베송 감독과도 만나는 인연이 이어지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뤽 베송, 모건 프리먼과 밥을 먹고 술도 마셨다. 통역이 필요하긴 했지만 좋은 친구를 얻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만 있는 거지, 이제껏 영어 한마디 못했는데 '루시'를 통해 비즈니스처럼 내 연기 영역을 확장하고 교두보를 확보하는 차원의 의미는 없다. 사실 '루시'에서도 내가 영어 못한다고 하니 상황을 바꿔주기도 했다.(웃음) '대호'도 그렇고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가 한국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미국에서는 (한국식이 아닌) 밥 때문에라도 안 된다. 하하하."
그는 '최민식이라면 믿고 본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유롭다"며 "그래도 무척 고마운 표현이다. 하지만 대중 취향에 촉을 세우면 피곤해진다. 어떤 작품은 망할 수도, 흥할 수도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항상 생각한다. 매번 잘될 수 없으니 기본에 충실하자는 마음을 갖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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