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자성어 정치

입력 2015-12-21 01:00:03

공자는 자신은 불우한 상황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고 했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원천우인'(怨天尤人)이다. 또 "군자는 뜻한 바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고도 했다. 중용에서는 '상불원천'(上不怨天'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음)하고, '하불우인'(下不尤人'아래로 남을 허물하지 말라)하라며 '네 탓'을 경계했다.

비슷한 의미로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사자성어 '반구제기'(反求諸己)도 있다. 이는 맹자가 "활을 쏘아서 적중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따름"이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너도 나도 남을 탓하기는 쉽다. '잘되면 내 덕이요, 못되면 네 탓'이다. '원천우인'이나 '반구제기' 같은 '네 탓'을 경계한 말은 그야말로 '공자 왈'인 세상이다. 우리가 얼마나 '네 탓'에 익숙한지는 정치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각종 민생 법안이 국회 벽을 넘지 못하면서 청와대는 국회를 탓하고, 여당은 야당을 탓한다. 야당은 대통령을 탓하고, 또 여당을 탓한다. 야당의 분당 사태로 야당 내에서 '네 탓이오' 공방이 벌어진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내놨다, 논어의 '천하무도'에 나오는 말이다. 혼은 혼군(昏君), 용은 용군(庸君)의 약자다. 혼군과 용군은 모두 무능한 군주다. 이에 사람이 걸어야 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된, 즉 야만의 상태라는 뜻의 '무도'가 결합했으니 '혼용무도'란 '어리석은 군주가 실정을 거듭해 나라 전체가 길도 없는 야만의 상태에 빠졌다'는 뜻이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진나라의 황제 호해다. 호해는 아버지 진시황이 병사하자 환관 조고의 농간으로 왕위에 올라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에 몰려 자결한 인물이다.

교수신문이 왜 하필 '혼용무도'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메르스 사태로 국가가 혼란을 겪은 것도,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 사퇴 압력을 넣은 것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야만의 상태에 빠졌다는 교수신문의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사자성어에서는 모든 것을 '네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이기심만 묻어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