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여성이 행복해질 때…

입력 2015-12-19 02:00:01

1982년 전북 익산 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1982년 전북 익산 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내년에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 되는 아들은 하마터면 갈 곳이 없을 뻔했다. 유치원이라는 곳은 등록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줄 알았던 나의 무지 탓인지, 아니면 이런 교육-보육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국가 탓인지 모르겠다. 국공립은 평균 100대 1, 사립도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유치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온 가족이 매달려 원서를 접수하고 추첨을 하러 다닌 '7일의 전쟁'을 생각하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며칠 전 한 조간신문 1면에 '아이 사라진 거리, 15년 뒤 한국 풍경'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아래 노인만 가득한 일본의 거리 사진도 함께 보도됐다. 한국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는 1.2명이고 초산의 나이가 평균 31세라며 이대로 가면 성장률 하락으로 나라에 위기가 온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31살에 출산을 했고 아이 하나만을 둔 상황이라 마치 나를 타박하는 기사 같아서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왜 내가 죄의식을 느껴야 하지 하면서도 저출산 문제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4년 전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맞벌이가 아닌 외벌이로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복직은 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출산 후 다행히 방송에 복귀했지만 나를 맞이한 것은 싸늘함이었다. 평등한 경쟁사회에서 육아에 대한 배려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시기와 불만의 대상으로 아이 때문에 동료와 후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한 달에 200만원씩 들어가는 육아 도우미를 감당하지 못해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아이를 맡기느라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같은 집에 살던 여동생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박근혜정부는 "0~5세 영유아의 보육과 육아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부터는 저출산의 위기를 극복하자며 아이를 둘 이상 낳자는 TV 광고도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기를 2030세대들은 출산을 더 기피하고 결혼마저도 포기하고 있다. 나 하나 살기도 힘든데 가족을 만들 자신이 없고 육아휴직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시스템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고생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신혼부부 주거에 관한 혜택을 늘려주고 보육과 육아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암담한 뉴스뿐이다.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을 30%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지역에서는 편성됐던 유치원 예산마저 전액 삭감되면서 당장 2주 뒤부터 쓸 누리과정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보육대란 우려라는 뉴스에 아침부터 엄마들이 모인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난리가 났다. '유치원비가 그럼 얼마나 늘어나는 것이냐'는 경제적인 고민부터 '애들 코 묻은 보육료를 다 어디로 빼돌린 것이냐,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 이민을 가야겠다'는 정부에 대한 비판까지 엄마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출산을 늘리는 데 있어 당장은 나라의 경제적 지원이 시급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깊게 새겨야 할 것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다. 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지, 왜 낳을 수 없는지 직접 목소리를 들어보고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저출산의 원인은 여성의 지위 향상에 있다"는 낡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여성의 몫인 출산을 늘릴 수 없다. 반여성 문화를 청산하고, 여성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가정, 직장, 사회 모두가 지원해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

배달된 신문을 보니 '여성이 행복한 사회, 국가가 아이를 책임져 준다'는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요새 유행하는 '백세인생'을 패러디하자면 "공감도 배려도 없는 이 사회에서 둘째는 안 낳는다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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