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마야인들이 예언했다는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청춘들은 마지막으로 무엇을 남기고자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마음속의 열정만큼 현실적인 여건은 따라와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구의 종말이라는 세기말적인 풍경이 이런 비루한 청춘들에겐 위안이 된다.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적어도 공평하니까. 영화 '그들이 죽었다'(2014)는 세상의 종말을 믿는 청춘에 관한 영화이다. 무명배우인 상석, 재호, 태희는 그 어느 영화에서도 캐스팅되지 않자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열정을 불태우며 의기투합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영화는 곧 엎어지게 된다. 결국 상석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뭘 해도 잘 안 되는, 혹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현실 속의 우리들과 같다. 실제로 이 영화를 연출한 백재호 감독 역시 무명 배우에 가깝다. 주인공을 맡은 김상석도 무명 배우이자 독립영화 감독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하다. 현실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곧 현실로 해석되는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지구의 종말은 없지만 지구의 종말만큼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이 존재한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과 같이, 우리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는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노력의 질과 양은 다를 수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노력하면서 산다. 영화 '그들이 죽었다'에서 역시 지구의 종말을 앞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아무리 그들이 비루한 청춘이라고 해도 영화를 만들고 레드카펫을 밟는 꿈을 꾼다, 물론 한번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인생처럼 대부분 인생은 그렇지 않다. 다만 실패의 반복 속에서 그 시행착오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 비로소 무언가가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현실에서는 실패의 반복이 여전히 실패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지구의 종말을 향해 떨어지는 유성들을 다시 우주 저편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이 우리들에겐 없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좌절감 역시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세상의 멸망을 목전에 둔 그 순간, 그들은 나지막이 마지막 대사를 옮긴다. '그들이 죽었다'가 영화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여 있는 영화인 만큼 마지막 대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세상의 멸망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것일 수도, 혹은 이 불가항력적으로 보이는 부조리한 시스템 앞에서 조용히 맞서 나가고자 하는 이 시대 청춘들의 작은 외침일 수도 있다.
독립영화감독'오오극장 프로그램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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