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소리' 대놓고 하는 여자의 연애담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선남선녀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평범한 얼굴에 다소 뚱뚱한 몸매지만 입담과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 독립적인 여성이 화려한 연애담의 주인공이 된다. 일명 '섹드립'(성적인 소재를 다루는 유머)의 거침없는 주고받기 대사가 특징이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등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크루볼 코미디는 위트 있는 대사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남녀 간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코미디의 하위 장르인 스크루볼 코미디는 이후 방송가로 이어져 시트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엄한 상류사회를 무대로 괴짜 주인공이 등장하여 파격적인 행동과 촌철살인의 속사포 같은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양식은 1970년대 뉴아메리칸 시네마 시대를 거치고,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로맨틱 코미디라는 유머와 낭만적인 감수성이 어우러지는 장르로 정착하게 되었다. 남다른 삶의 철학을 가진 주인공들이 티격태격하며 대사를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지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연애를 진전시키는 서사 구조는 젊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데이트용 영화로 소비된다.
'애니 (1977),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500일의 썸머'(2009) 등이 로맨틱 코미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다. 여기에 '화장실 유머'라고 불리는 노골적인 성 농담이 곁들여진 로맨틱 코미디가 '메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나 '아메리칸 파이'(1999)의 성공으로 인해 또 하나의 하위 장르로 정착되었다.
우리도 '색즉시공'(2002)과 '몽정기'(2002) 등 한국식 화장실 코미디가 성공했고, 이후 유행처럼 만들어지다가 고만고만한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화장실 코미디는 'SNL' 같은 TV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토크쇼에서 이어지고 있다.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는 뻔뻔한 섹드립을 펼치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장르의 변주를 이룬다. 감독 주드 애파토우는 '뻔뻔한 딕&제인'의 시나리오 작가이며, 'SNL' 마니아다. 그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5), '사고친 후에'(2007)의 대성공으로 화장실 코미디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는 에이미 슈머라는 발군의 코미디언과 함께한다.
에이미 슈머는 자신의 이름을 딴 TV 코미디 프로를 가질 정도로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코미디언이다. 그녀는 섹스와 관련된 높은 수위의 성인 코미디에서부터 사회를 겨냥하는 블랙 코미디까지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코미디언으로 유명하다. 이런 그녀가 직접 각본을 쓰고 주인공을 맡아 영화를 끌어간다.
남성지 에디터 에이미(에이미 슈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자유연애를 교육받고 자랐다. 사랑보다 쾌락이 더 중요한 그녀는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들과의 잠자리에 거리낌이 없다. 평범한 가정을 이룬 동생 킴(브리 라슨)을 무시하는 것도 다반사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에이미는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취재원 스포츠 의사 애론(빌 헤이더)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자기 방식을 전혀 양보하지 않으면서 연애, 가족, 그리고 일까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지만, 연인관계의 진전이 쉽지 않은 에이미가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지, 가족관계가 회복될지, 일을 통해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든다.
영화의 미국식 화장실 유머가 버겁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 대 전업주부의 대결과 연대,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다양한 해답지를 제공받는다.
카메오 출연이 화려하다. 예술영화 팬과 NBA 팬, 프로레슬링 팬, 힙합 팬들을 두루 설레게 할 조연진이다. 틸다 스윈튼, 매튜 브로데릭, 르브론 제임스, 존 시나, 메소드 맨, 아마레 스터드마이어 등 갑자기 툭 튀어나온 유명인들을 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전문직 왕자가 개성으로 충만한 여성 캐릭터를 구원하는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내면의 갈등을 겪는 그녀가 기발한 들이대기와 자기 되돌아보기를 반복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현대 여성에게 커다란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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