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시리아에는 무덤덤, 파리에는 경악
시작은 SNS에 돌아다니는 한 장의 편집된 사진물이었다.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벌어진 테러에는 무표정으로 일관한 얼굴이 파리 테러에는 흐느끼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사진) 이 사진물과 함께 SNS에서는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 열기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거기에 파리 테러가 보도되던 14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민중 총궐기 시위까지 일어나면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국가와 국민 사이의 폭력사태보다 파리 테러가 더 중요한가"라는 식의 문제 제기까지 겹치며 SNS는 때아닌 '키보드 전쟁'이 벌어졌다.
◆테러에 대한 반응, 국력 따라 다르다?
지난 13일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이후 SNS는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IS의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혹은 충격에 빠져 있을 파리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겹쳐 올렸다. 페이스북이 만든 이 '프랑스 국기 필터' 서비스에 일부 사람들이 불편함을 표시하면서 논쟁은 시작됐다.
불편함을 표시한 사람들은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나기 전날인 12일에 있었던 한 테러 사건을 언급한다. 지난 12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 외곽 부르즈 엘바라즈네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인근 아인엘 시케 지역의 쇼핑가에서 폭발물이 장착된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폭발물을 터뜨리면서 최소 43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또 파리 테러가 일어난 날 이라크의 한 장례식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 21명이 숨졌다. 이 두 테러는 파리 테러와 같이 IS가 "우리가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파리 테러와 달리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의 경우 짤막한 외신 소식으로만 취급됐다.
사람들은 연달아 일어난 이 두 테러의 주목도가 너무 차이나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국기 필터와 프랑스에 있는 사용자들이 클릭 한 번으로 자신이 무사하다고 알릴 수 있는 '안전확인' 기능을 도입하는 등 파리 테러에는 많은 조치를 취했던 페이스북이 레바논과 이라크 테러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대국의 테러만 주목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관심끌기용' VS '추모의 표현'
이번 논쟁의 가장 큰 핵심은 '프랑스 국기 필터를 프로필 사진에 다는 건 서구중심주의적인 행위인가'였다. '서구중심주의적인 행위'라고 보는 사람들은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약소국에서 벌어진 테러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강대국이라 하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사람들이 반응했다"며 "애도는 필요하지만, 네티즌들이 자신의 SNS에 관심끌기용으로 파리 테러를 바라보는 듯한 태도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지다정(22) 씨는 "IS의 테러는 파리에 살고 있는, 파리를 주목하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애도에 대한 공통된 감정 표현을 위해 국가적 상징이 강한 프랑스 국기 필터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구중심주의적인 행위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측은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은 현재 전쟁이 계속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어난 테러는, 이런 곳과 전혀 상관없는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와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며 "프랑스가 매번 테러가 일어나는 곳도 아니기에 당연히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의 차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임병헌(25) 씨는 "프랑스라는 국가의 브랜드 가치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언론과 SNS 등에서의 파급력도 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아나 레바논의 테러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같이 추모하자고 권유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가 그 두 곳에 관심이 없었다는 이유로 지금의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건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국제관계에 대한 논의 계기가 돼야
13일에 일어난 파리 테러사건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추모 열기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파리'라는 도시의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IS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차별적 테러를 가할 수 있음을 파리 테러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확인함으로써 오는 분노와 불안이 가장 크다. 실제로 파리 테러 이후였던 지난 23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공중화장실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며 '일본에도 IS의 테러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조성됐고, 숨진 IS 대원의 소지품 중 대경교통카드와 한국 기업의 사원증이 나온 사례도 있다. 게다가 이번 파리 테러를 일으킨 IS 대원들은 대개 유럽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뒤 파리로 들어와 테러를 일으켰다.
물론 IS 본거지로서 매일 공격당하고 있는 시리아의 민간인과,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죄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명이 파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명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더 중요하다는 식의 다툼은 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이번 테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희석 교수(경북대 정치외교)는 "이번 파리 테러에는 IS의 만행과 동시에 유럽으로 밀려오는 중동 난민 수용의 문제, 유럽 내부의 무슬림 지위 문제 등 다양한 국내'외적 문제가 얽혀 있다"며 "언론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유럽의 테러가 벌어지는 이면에 어떤 현상이 있는지 제대로 알려야 하며, 미디어 수용자들도 논쟁을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테러와 국제관계에 대한 시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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