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매산고택 유물 7천점 '햇빛'…아파트 발코니→국학진흥원 이사

입력 2015-11-27 01:00:05

정중기 선생 차종손 정문현 씨 "선친 숙명으로 안고 사신 유물 체계적인 보존위해 기탁"

영천 한 아파트에 쌓여 보관돼 오던 영일 정씨 매산 정중기 선생 유물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됐다. 사진은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정문현 종손과 최연숙 박사.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영천 한 아파트에 쌓여 보관돼 오던 영일 정씨 매산 정중기 선생 유물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됐다. 사진은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정문현 종손과 최연숙 박사.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선친께서 생전에 숙명처럼 떠안고 오셨던 매산 할배의 유물이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집도 여느 종가들과 마찬가지로 고택에 보관되던 유물이 도둑맞거나 훼손되는 등 관리가 어려웠어요. 이제라도 유물들이 역사적'문화적'학술적 가치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가을 비가 추적이던 지난 23일 오전. 영천의 한 아파트 입구에서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 소속 직원 10여 명을 맞은 영천 매산고택 정문현 차종손.

영일 정씨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1685∼1757) 선생의 11세손인 정문현 씨는 이날 그동안 영천 임고면 선원리 매산고택에 전해 내려오던 매산 선생의 유물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그동안 매산고택 유물들은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종손 정재영 어르신이 대구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영천으로 돌아온 이후 매산고택에 있던 것을 이곳 아파트로 옮겨와 사랑방과 발코니에 보관해 왔다.

오래전 사람이 떠나 빈집이었던 매산고택에서 많은 유물들이 도둑맞거나 훼손되는 것을 보다 못한 종손 어르신이 아파트로 옮겨놓았다. 그 후로도 오랜 세월 종부인 박경득(83) 할머니는 방과 발코니에 쌓인 책과 서류들이 썩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말리고 바람을 쏘이는 등 관리에 노력해 왔다.

박경득 종부는 "1980년대까지 고택에서 살다가 대구로 이사한 후 지난 1997년에 이곳 아파트로 옮겨 놓은 것이다. 종손은 고택에 있던 유물들을 아파트로 옮겨와 매일 손질하는 등 숙명처럼 떠안고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날 한국국학진흥원은 2천여 점을 예상했으나, 분류와 인수 작업을 끝낸 결과 7천16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파트 발코니에 쌓인 5개의 나무상자 함(궤짝)에서는 문서가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시작된 분류 작업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책 595책(권)과 5천600점의 문서를 비롯해 갓끈과 갓끈을 보관하는 맞춤식 갑(匣), 호패 등이 나왔다. 주요 고서로는 '주서절요집해' 49책과 간찰첩 등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 최연숙 박사는 "대부분 종가들이 종택이나 종가에서 살림살이를 벗어나면서 유물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문에 국학진흥원의 문중 유물 기탁사업이 날이 갈수록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매산종가는 아파트에서도 환기를 시키고 좀약을 사용하는 등 관리를 잘해 유물 상태가 양호하다"고 했다.

이날 인수된 매산종가 유물들은 앞으로 고서와 고문서로 분류하고, 고문서는 간찰'교지'호적'편지 등 유형별로 분류돼 목록과 함께 내용을 적은 '정기 목록집'을 만들어 기탁 문중에 전달된다.

게다가 해마다 '문중 기탁자의 날' 행사를 마련해 유물을 기탁해 주신 문중 어르신들을 초청, 국학진흥원 기탁 유물 관리와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최 박사는 "처음에는 기탁을 꺼리던 문중 어르신들이 기탁한 이후에는 국학진흥원에 대한 소속감과 친근함이 깊어져 각종 행사 참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국학진흥원이 보관하고 있는 유교책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기탁 유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은 "경북의 큰 문중 유물은 대부분 기탁돼 관리해오고 있다. 개별 문중의 유물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진흥원의 기탁사업에 관심을 당부한다"며 "유교책판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앞으로 문서 등 2, 3개의 유형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