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世風] 낭패민국(狼狽民國)

입력 2015-11-17 02:00:04

낭패(狼狽)는 실체가 없는 전설의 동물로 이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낭은 뒷다리가 없거나 짧고, 성질이 사납다. 반면 패는 앞다리가 없거나 짧고 순하지만 머리가 좋다. 모습과 성질이 전혀 다른 둘을 따로 떼면 둘 다 살아남을 수 없다. 사냥할 때 마음이 일치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상대가 기분 나쁘다고 독초를 먹어 결국 함께 죽는 불교의 머리 둘 달린 새인 카루다와 우바카루다의 운명과 같다.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동물까지 만들어 선인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화합과 협조의 중요성이다. 또한, 각자가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줄기의 한몸이고, 어느 한쪽이 허물어지면 전체가 함께 허물어진다는 것을 보이고자 함이다.

이런 예는 무수하다. 권리와 의무, 자유와 구속 등과 같은 추상적인 낱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낱말은 속성이 전혀 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동전은 양면이 함께 뚜렷해야 하나의 온전한 동전 역할을 하며, 더욱 값나가는 존재가 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낭패민국(狼狽民國)이다. 주변국의 정세와 세계적인 경제난, 국민의 삶을 보면, 화합해도 어려움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은 데 여러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이다. 개별 주장을 뜯어보면 각각 충분한 명분과 논리가 있고,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큰 뜻도 같다. 좁게는 지역사회, 넓게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이다. 다만, 이를 이루려는 방법과 과정이 다른 것이 갈등으로 나타난다.

'다르다'는 것이 사고나 문화의 다양함을 뜻하고, 사회가 충분한 수용 능력이 있다면 '다름'의 확산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의 주장을 깔아뭉개거나 겁박한다면 이는 명백한 횡포이며 폭력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최근의 혼란도 이와 같다.

가뜩이나 흉사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고, 노동개혁 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난데없이 역사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도는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하다. 또한, 반대 여론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권한만을 내세워 강행하는 것은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반대를 주도하는 쪽의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다.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의 말살을 주장하며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서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할 찬성 쪽의 주장을 적대시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고등학생이 국정화 반대 시위를 한다고 신상 털기를 하는 것이나 찬성 성명을 발표한 교수에 대해 제자들이 '권력에 아부한다'고 몰아붙이는 것 모두 반대 의견을 존중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내 생각을 표현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절대적인 언론자유의 권리다. 이는 다른 이에게도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며 누구도 강압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사회에는 이 절대적인 권리와 똑같은 무게의 의무가 존재한다.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만큼 다른 이의 생각도 존중해야 하는 의무다. 설사 다른 이의 주장이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근거는 합리성이나 보편성, 객관성이어야 한다. 내 생각에 기준한 잣대를 만들어 재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리만 주장하며 의무를 소홀하면 혼란만 있을 뿐이다. 민주사회는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것이 의무일 때 영속성을 갖는다.

'가장 슬픈 것'(The Saddest Thing)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미국 포크 가수 멜라니의 '니켈 송'(Nickel Song)의 가사를 우리 사회에 빗대면 뜻은 좀 더 명확해진다. 니켈은 5센트짜리 동전이다. 니켈을 넣으면 5센트 값어치의 노래가 나올 뿐인데 사람들은 늘 1달러짜리 노래를 요구한다고 풍자한다(실제 이 곡은 도박 기기에 비유한 것이다). 5센트짜리 의무만 하면서 1달러짜리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는 물질적으로 아무리 번성해도 헛껍데기일 뿐이다. 그래서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제 머리만 똑똑하고 절대적이라 믿고 까부는 이가 가득한 낭패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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