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연기, 담배/ 에릭 번스 지음/박중서 옮김/ 책세상 펴냄
오늘날 담배의 유해성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담뱃갑마다 경고 문구가 인쇄되어 있고,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금연을 가장 먼저 권하고, 텔레비전에서는 흡연으로 발생하는 인체의 끔찍한 변화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올해 초 정부가 담뱃값을 2천원 인상했을 때, 담배 판매량은 다소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9, 10월에 들면서 담배 판매량은 종전과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담배는 건강을 해치고, 호주머니를 뒤지고, 주변의 비난을 부르고, 옷에 악취를 남긴다. 후미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청승을 떨게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담배를 찾는다. 인류를 단단히 사로잡은 담배는 인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이 책은 담배와 관련된 거의 모든 문화, 정치, 사회, 경제의 역사를 추적한다.
1천500년 전 마야 사람들은 담배를 신이 내려주신 선물로 추앙해 온갖 제의와 질병치료에 사용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담배는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식민지를 잃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잉글랜드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식민지를 건설할 때 보낸 이주민은 104명이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그들은 수년간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며 절망 속에 죽어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한 사람이 존 롤프라는 인물이다. 그는 거듭된 실패 끝에 뛰어난 품질의 담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책은 '만약 식민지인들이 담배 재배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잉글랜드 모국은 그들을 방치했을 것이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말한다.
담배가 큰 수익을 내자, 잉글랜드는 여기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오랜 전쟁으로 바닥난 국고를 채우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을 해외의 다른 도매상에게 팔 때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잉글랜드 독점 무역상에게 넘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1775년 무력반란을 일으키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담배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군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대공황기에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로하는 연기였다.
담배를 접했을 때 유럽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다수의 유럽인은 경멸과 저주, 탄식과 비웃음을 쏟아냈다. 그들은 '인간의 몸속에 부엌을 만들어 번들거리는 기름진 검댕으로 그곳을 더럽히고, 감염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유명한 인사 월터 롤리 경은 영국 상류계와 문단에 담배를 유행시켰다. 그는 영국 문인들의 본거지였던 '머메이드 태번'이라는 술집에 담뱃잎과 담뱃대를 한 아름 뿌리기도 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옥신각신하는 동안에도 담배는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담배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담배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급기야 1964년 1월 미국 보건위생국 국장 루서 테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담배와 각종 질병의 인과성을 387쪽 분량에 걸쳐 발표함으로써 담배는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관 뚜껑에 박는 못' 신세로 전락했다.
요즘 담배는 대체로 잘게 썬 담뱃잎을 종이에 만 것이고, 끝에 필터가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담배가 대중화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1950년대 이전, 이런 형태의 지궐련(紙卷煙)은 하층민들이 피우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그들만의 담배를 피웠다. 마야인들은 진흙을 구워 만든 담뱃대를 이용했고, 유럽인들도 담뱃대를 주로 썼다. 담배를 눌러 담는 금속 마개, 찌꺼기를 긁는 금이나 은 쑤시개 등 사치품이 유행했다. 신사들에게는 코담배가 인기였다. 아름답게 장식한 담뱃갑이 유행했고, 코담배 예법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씹는 담배를 선호했고, 굵다란 엽궐련을 특히 사랑했다. 지금과 같은 지궐련은 기술발전과 더불어 대량생산, 저가공급, 편리성을 갖추면서 담배계의 제왕이 되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담배는 '악마'에 비견되며, 구조적 폭력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담배 수출은 질병과 불구, 죽음을 수출하는 행위로 비난받기도 한다. 일본의 환경사회학자 도다 기요시는 담배회사를 '죽음의 상인'이라 부르고, 담배의 생산'판매'소비를 테러에 비유했다. 담배는 그렇게 변해왔다.
지은이 에릭 번스는 미국 '폭스 뉴스'의 '폭스 뉴스 워치'를 10년간 진행한 베테랑 언론인으로 이 책을 비롯해 '악명 높은 기자들'과 '미국의 증류주' 등을 썼다. 518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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