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장군이 사마르칸트 왕족의 아들?
소그드 隊商 담비 가죽 구하려 고구려行
왕족 간 정치적 연합에 사돈 됐는지도
중앙아시아는 생각보다 가까웠던 이웃
연세대 지배선 교수는 논문 '사마르칸트와 고구려 관계에 대하여'에서 "바보로 유명한 고구려 온달(?~590) 장군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건너온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라며, 새롭고 파격적인 주장을 학계에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중국 정사(正史)인 구당서 권 198, 강국전(康國傳)에서 "한대 강거(康居)라는 지역에 월씨(月氏)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 나온 온씨(溫氏) 성을 가진 사람이 강국의 왕이 됐다"고 하는 기록을 근거 삼았으며, 당시 강국(Sogdiana)과 고구려 사이에 비단길(혹은 담비의 길이었던 초피로)을 통한 교역이 빈번했음을 고려하면 온달이 사마르칸트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고 있다. 참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우리 역사 강역(疆域)을 확장하는 세기적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장사에 도통(道通)했던 것으로 평판 자자한 소그드 사람, 카라반(caravan) 대상(隊商)들이 뭘 구하려고 천산을 넘나들며 그토록 먼 고구려의 땅, 만주와 연해주까지 어려운 걸음을 했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옛날 실크로드의 루트와 품목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크로드는 한두 길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분류만 해도, 지금 학계에서는 3개의 종심(縱深)이 되는 루트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산 비단이 주로 교역 되었던 이스탄불과 서안(옛 長安) 간의 오아시스 로드, 그 위 지대의 대륙을 가로지르며 주로 초피(貂皮·담비 가죽)가 교역 되었던 흑해와 만주 간의 스텝로드, 끝으로 남쪽 바다로 연결된 남해로가 그것들이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담비 가죽옷은 왕실이나 귀족 층만 즐겨 입었던 귀물(貴物) 중의 귀물이었다. 로마에서는 무게만큼의 금보다도 더 가격이 나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중에도 연해주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고구려 담비 가죽은 당대에 최고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소그드 대상들이 이 담비 가죽을 구하려고 고구려까지 걸음 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상상력을 좀 더 비약시켜 보자. 소그디아나 왕실 사람들은 대상들을 이끌고 만주까지 빈번히 왕래했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기는 정착촌을 만들어 눌러앉아서 상역(商易) 활동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정착하다시피 한 소그드 왕가의 일원들은 큰 경제력의 소유자로 고구려 사회에서도 당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왕가끼리 혼사가 진행되었을까, 아니면 고구려 여인을 취했을까? 아직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우여곡절로 온달이 탄생했을 것이고, 정치적 연합 또는 결탁으로 온달과 평강공주가 결혼하게 되었지 않았을까? 온달이 평원왕(平原王)의 부마(駙馬)가 되었으니, 강국과 고구려는 사돈지간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역사 지평선에서 불쑥 조우관(鳥羽冠)과 환두대도(環頭大刀)의 고구려 사신들이 묘사된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의 벽화가 등장하였고, 이와 연결시켜 보면 기막힌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오게 된다. 벽화에서는 강국의 마지막 왕, 와르흐만(650~670 재위)이 각지에서 온 사신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장면이 나오고, 돌궐인, 터키인, 중국인, 고구려인 등등의 사신들로 바글바글하다. 고구려가 멸망하는 해가 668년이니, 아무래도 벽화의 내용은 그것보다는 조금 이전이었을 것이다.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의 위협과 침략에 풍전등화의 처지이니 화급한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은 아닐는지? 고구려로서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외교만이 생존의 길이었을 터, 서역에서 당나라 후미를 공격하게 되면 전선이 동서로 분할되니 침공의 예봉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불세출의 영웅, 연개소문은 사돈지간인 소그디아나에 사신을 특파하여 위급을 알리며 천산 너머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공격해 달라지 않았을까? 벽화는 먼먼 옛날부터 우리가 서역까지 친교를 맺었음을 알리며, 우리가 일찌감치 세계인이었음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서역, 즉 오늘의 중앙아시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던 우리의 이웃이었다. 근현대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비장한 현시점에서도 더 웅장했던 우리 상고사(上古史)에도 새 지평을 열려는 국민적 관심 또한 화급하지 않을는지!
※전대완: 1954년 대구생. 경북고·서울대. 뉴욕부총영사. 태국 공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우즈베키스탄 대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