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의 공존 포항 히스토리텔링] <1>포항의 원형, 연오랑세오녀

입력 2015-11-09 01:00:15

포스코 잉태 '빛' 뿜는 日月之鄕…현실로 우뚝 선 신화도시

일월지향(日月之鄕) 포항의 원형, 연오랑세오녀의 의미를 잘 알고 이를 포항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월지향(日月之鄕) 포항의 원형, 연오랑세오녀의 의미를 잘 알고 이를 포항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해면사무소 뒤에 있는 일월사당
동해면사무소 뒤에 있는 일월사당
호미곶광장에 세워진 연오랑세오녀 조형물
호미곶광장에 세워진 연오랑세오녀 조형물

역사와 문화는 공존한다. 역사가 문화가 될 수 있고, 문화가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그 현장에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우리는 그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과거를 알게 되고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과거를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왜곡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에도 소중한 역사, 문화적 자산들이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매일신문은 포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나는 '히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 고장의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앞으로 10회에 걸쳐 진행될 '히스토리텔링' 여정을 지켜봐 주기 바란다.

첫 테이프는 연오랑세오녀 부부의 이야기가 끊는다.

◆일월은 세상의 중심이다

일(日), 월(月)은 해와 달이다. 예부터 해와 달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해와 달은 인간에게 토템적 의미와 함께 세상의 중심을 뜻했다. 모든 삼라만상이 해와 달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해와 달이 포항에 있다.

포항 남구 동해면의 일월동이 그것이며, 해병대 1사단에 있는 일월지(日月池)가 증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는 연오랑세오녀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용일 포항문화원장은 연오랑세오녀를 설화가 아닌 신화라고 강조했다.

서기 157년 신라 8대 아달라왕 때였다.

포항 도구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연오랑은 바다에서 여느 때와 같이 해조(미역 종류)를 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위가 나타나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일본 사람들은 연오랑이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

남편을 찾던 세오녀는 바위 위에 놓인 연오랑의 신발을 보고 바위에 올랐다. 세오녀도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가 왕비가 된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난 후 신라는 해와 달의 광채가 사라지고 어두워졌다.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임을 알게 된 임금은 신하를 보내 다시 돌아올 것을 권했다. 그러나 연오랑은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요"라며 그 비단을 주었다.

신하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으며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다.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 또는 도기야라 했다는 문장은 오늘날 포항이 일월신화의 본고장이라는 역사적 담론을 담고 있다. 포항문화 최고'최대의 그릇임을 상징하는 지명이다.

현재 동해면사무소 뒤에는 일월사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연오랑세오녀를 기리는 제를 올린다. 또 동해면사무소에서 청림동 쪽으로 빠져나오면 일월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1사단에는 세오녀의 비단을 놓고 제를 지낸 연못이 있는데 바로 '일월지'다. 신라시대에는 이를 해달못이라고 불렀다.

◆일월지

일월지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못이라 해 '천제지'라고 하기도 했고 해와 달의 빛이 다시 돌아왔다고 '광복지'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연못보다는 규모가 꽤 크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군부대 안이라서 일반인에게는 주말과 휴일에만 개방한다. 이곳에는 일월지 사적비와 연오랑세오녀 설화비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숙종 초에 일월지를 한번 수축했다고 전하며, 1932년에 일월지의 서쪽 제방 약 200m를 수축한 뒤 1943년 일본인들이 이 못 부근에 일월신사(日月神社)를 창건한다고 건축자재를 쌓아 놓았다가 8'15 광복으로 중단됐다.

광복 후 미군부대가 이 기지를 일본군으로부터 인수해 기지의 확장공사에 들어가 일월지를 매립하기 시작하자 지역의 뜻있는 인사 몇 사람이 이 못의 신성한 역사 유래를 알려주며 공사를 중지시켰다.

해병부대 안 일월지 못둑 바로 밑의 농지였던 곳에 1989~1990년 12만여㎡의 연병장이 조성됐다. 4, 5년이 지난 후 날이 가물어 일월지 못물을 빼 사용했는데 바로 그 이튿날 해병부대 군인들이 수색작전을 펴다가 12, 1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신성한 일월지 물을 건드려 그렇다고 해 그때부터 군부대에서 절대 일월지의 물을 손대지 말라고 했다고 전한다.

지금의 일월지 형상은 버선 모양의 반달형이었으나, 과거 40여 년 전에는 지금 면적의 약 1.5배 크기 둥근 원형에 가까웠다고 한다.

1997년 9월 29일 포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사적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됐다.

◆연오랑세오녀는 실존인물?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주인공인 연오(延烏)와 세오(細烏), 진한의 소국 근기(勤耆), 신라시대의 근오지(斤烏支), 근오형변(斤烏兄邊), 오량우(烏良友), 오천(烏川), 고려시대의 영일'오천(烏川) 및 일월지'일월신제 등은 모두 태양과 일월을 상징하는 명칭이다.

연오와 세오 역시 삼족오태양(일월)을 상징하는 인명이다. 태양은 금오(金烏)이며, 세오(細烏)도 쇠오, 즉 금오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신라 왕정의 직관명인 대오(大烏)와 소오(小烏)를 감안할 때 주인공들은 특별히 귀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연오랑과 세오녀도 근기국과 신라의 왕을 보필하는 지배세력의 유력한 인사(사제자, 왕족, 귀족, 고급기술자 등)로서 태양을 상징하는 왕을 대신해 태양의 빛을 온 나라와 백성에게 안내하고 밝히던 귀중한 존재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신라는 동경과 교류의 대상이었다.

포항 출신의 박일천 선생은 방적기술 세력의 우두머리 연오랑세오녀를 주축으로 한 근기국의 지배층이 영일을 발선지로 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망명설을 피력하고 있다.

연오랑세오녀의 일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위에 오른 후에 방직물을 공급받던 신라가 직물의 수입로가 막히자 연오랑과 세오녀에게 왕사를 보내 귀국을 독촉한다. 하지만 연오랑 부부는 왕의 귀국 명령을 거절하고 그래도 조국의 동포를 잊을 수 없어 비단 한 조각을 내어주니 왕사가 가지고 돌아와 견본으로 삼아 직물을 보급하게 했다고 보고 있다.

또 연오랑이 신라 4대 왕인 석탈해의 손자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등의 권력 다툼 속에서 연오랑 왕자가 일본으로 무기의 재료가 되는 철을 찾아 나섰다가 정착한, 일종의 망명자로 보고 있다. 고사기라는 일본 사기에는 스사노라는 신라의 신이 일본 이즈모로 건너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를 연오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연오랑세오녀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연오랑세오녀는 포항의 정신적 DNA

연오랑세오녀는 포항인 최초의 신지식인으로, 신천지를 개척해 일본 소국의 왕과 왕비가 된 신화적 실존 인물이다.

포항은 연오랑세오녀 브랜드를 통해 전통과 미래를 함께 생각하며, 향토와 나라를 빛내고 세계와 우주를 개척하는 진취적인 인재를 배출해내는, 미래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신화도시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포항은 빛의 도시다. 해와 달의 상징인 일월지향이며 빛은 포스코로 대변된다. 이는 다시 빛이 밝고 바른 '광명정대'(光明正大)로 연결된다. 이 속에는 홍익, 개척, 화합, 충절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

철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며, 포스코를 통한 산업화와 연오랑세오녀의 일본 철기문화 전수는 개척이고, 산업화에 따른 원주민과 외지인이 화합해 도시발전을 이룩해 낸 것은 화합이며, 정몽주와 같은 굳은 절개를 지닌 선비를 배출한 것은 충절을 의미한다. 각각의 의미가 모여 포항 발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사학자들은 풀이한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포항의 역사와 문화 저력이 됐던 일월정신(포항정신)은 역사의 시련과 위기 때마다 시대적 과제를 달성해 온 포항의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포항은 1968년 포스코의 설립에 의해 영일만 신화를 이룬 철강도시라는 이미지만 생각하고 있어 아쉽다고 향토 사학자들은 얘기한다.

배용일(74) 포항문화원장은 "포항은 연오랑세오녀의 일월신화를 낳은 신화의 도시다. 포항은 연오랑세오녀가 신천지를 개척하고 신라의 빛을 회복하여 제1의 영일만 신화를 창조했다. 지난 1968년 포스코의 설립으로 제철보국의 한국 근대화를 이룩해 제2의 영일만 신화를 재창출했다. 바야흐로 지금부터 꿈과 희망의 도시, 첨단과학문화관광도시, 글로벌 포항을 향해 제3의 영일만 신화에 도전, 점화할 때"라고 말했다.

배 원장은 또 한민족 문화권을 상징하는 '삼족오태양' 문양을 '신화의 도시, 포항'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현대 포항의 '삼족오 세 발'은 3S(Sun, Steel, Science, 또는 Sightseeing)를 표방하며, 이 세 발은 포항신화의 과거(Sun), 현재(Steel), 미래(Science) 발전의 3단계를 의미한다는 것.

앞으로 한국과 일본 태양신화의 요람인 포항이 삼족오 일월신화를 브랜드화하고 일본 신화의 도시와 자매결연, 문화교류 등을 모색한다면 양국 선린교류의 한 물꼬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향토 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포항문화의 고유성과 독자성 없이는 애향심도 세계화도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에 포항문화의 정체성이 다른 지역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극단적인 근본주의 역시 경계해야 한다. 일월지향, 연오랑세오녀는 포항의 정신적 DNA이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포항 여론 주도층의 제언이다.

도움말 : 배용일 포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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