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49명의 명화 '기록'으로 접근…시대상·작가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
명화보기 좋은 날/이소영 지음/슬로래빗 펴냄
세계적 명화들을 '기록'으로 읽어낸 책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림은 화가 자신의 시대와 사적 생활 혹은 남기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기록한 것이다'는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모딜리아니는 결핵과 알코올 중독으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부인 쟌느를 그렸는데, 그들 부부의 뜨거운 사랑의 증거로 남았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1873년 '봄'을 그렸는데, 그가 화폭에 드러낸 봄은 화사하지도 밝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림 한쪽에는 아직 어둠이 남아 있고, 다른 쪽에는 방금 비가 멎은 듯 무지개가 걸려 있다.
밀레의 그림 '봄'에서 우리는 다양한 봄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진즉 도착한 봄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여장을 푸는 봄도 있다. 그림 아래쪽, 햇빛이 들지 않는 쪽에는 아직 잠자는 봄도 있다.
모두에게 오늘이 봄일 수는 없다. 봄이라는 계절을 맞이했지만 누군가에는 꽃샘추위가 파고드는 봄일 수 있고, 누군가에는 예기치 않았던 비가 내리는 봄일 수도 있다. 꽃놀이 객과 비를 피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이 섞여 있는 것이다. 밀레는 사람마다 다른 봄을, 각자의 인생속도를 보여준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피에르 쇠라는 차분하고 인내심 많은 작가였다. 그는 충동적인 행동을 싫어했다. 예술가들에게 흔해빠진 스캔들 하나 없었다. 규칙적인 삶을 살아갔고, 서른둘 젊은 나이에 전염성 후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1884년부터 1886년까지 2년에 걸쳐 같은 힘으로, 같은 속도로 점을 찍어 완성한 그림이다. 작은 점을 같은 속도, 같은 힘으로 매일 찍어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그림을 통해 쇠라는 '사물은 단색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주변의 수많은 대상과 색채 대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과 '인간의 존재 역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정체가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쇠라 자신이 얼마나 규칙적이고 차분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인지도 보여주었다. 쇠라는 완성된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릴 만큼 많은 습작 작품을 남겼다. 수많은 습작은 그의 진중한 품성을 보여준다.
러시아 여성화가 지나이다 세레브리아코바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뛰어난 건축가였고, 아버지는 조각가였으며, 삼촌 역시 화가였다. 집안 곳곳에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겼고, 그녀의 혈관에는 뜨거운 예술혼이 흘렀다. 그녀가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동생들이 건축가와 그래픽아티스트로 살았던 것은 그런 집안 내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1909년 그린 '화장대에서'는 그녀의 상큼하고 빛나던 젊은 시절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을 다듬는 그녀의 눈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애정으로 충만하게 빛난다. 그러나 1917년 10월 볼세비키 혁명으로 집안이 산산조각 났고, 남편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화려했던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척박해졌다. 그래서일까, 이후 그녀가 그린 작품은 유화보다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은 목탄화나 연필화가 대부분이었다. 1923년 그녀가 그린 작품 '부엌에서'와 '식탁 위의 카띠야'는 끼니를 이어가는 생활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서양 중세화가부터 현대 한국화가까지, 순수회화부터 공공 미술까지 49명의 화가가 남긴 명화를 소재로, 작가의 일상을 유추하고, 그림 앞에 선 필자의 하루를 생각해 보는 글들과 소소한 생활의 가치를 담고 있다. SNS를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출근길 명화 한 점'의 두 번째 이야기다. 지은이 이소영은 네이버에서 '빅쏘'라는 필명으로 미술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368쪽, 1만6천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