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커피 이야기] 싸게 파는 커피 왠지 저질 느낌? "로스팅이 중요, 원두는 비슷해

입력 2015-10-31 01:00:09

"악마처럼 검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지옥처럼 뜨겁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1754~1838)는 커피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한 잔의 커피 속에는 악마를 대면하는 것처럼 무서운 가격과 천사의 몸짓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 지옥을 보는 것 같은 불편한 사실,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함을 만드는 방법이 모두 숨어 있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커피에 관한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원두 한 알에 담긴 무궁무진한 이야기, 나날이 발전하는 커피 내리는 법들도 소개한다. 마지막에는 가을을 맞아 커피 애호가들이 카페도 추천하니 커피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모닝커피 한잔 하면서 이번 주 주말판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커피 한 잔의 경제학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단지 원두를 볶은 뒤 갈아서 추출해 마신다는 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원두 한 알이 우리에게 오는 동안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다. 원두 한 알이 우리에게 와서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 그 속에는 노동 문제, 경제 문제, 인간의 심리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숨어 있다. 우리가 마시는 한 잔의 커피에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봤다.

◆원두도 유행을 타더라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비싸게 팔리는 원두가 뭔지 아세요? '에스메랄다 게이샤'랍니다."

대구 중구에서 로스터리 숍을 운영하는 한 커피 전문가가 일러준 최근 대구의 커피 분위기다. 이 전문가의 말은 대한민국 커피 문화의 불편한 진실 한 가지를 알려주고 있다. 바로 커피 원두가 심하게 유행을 탄다는 사실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990년대 후반에 불었던 '헤이즐넛 커피'의 유행을 기억할 것이다. 헤이즐넛 커피는 원두커피에다 헤이즐넛 향이 합성된 커피였다. 헤이즐넛 커피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커피 원두 안에 헤이즐넛이 들어가 있다고 믿은 소비자들이 꽤 있었지만, 질이 그리 좋지 않은 원두에 향을 입혀 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그 열기가 식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급속도로 늘 무렵, 일반 카페는 질 좋은 원두를 이용해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스페셜티 커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주목받은 커피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영국 왕실에서 마시는 커피'라는 소문까지 겹쳐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국의 수요를 대기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피전문점과 대형마트의 커피원두 판매 코너에는 다른 커피 품종에 블루마운틴을 조금 섞어 '블루마운틴 블렌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결국 원래 블루마운틴의 맛에 미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기가 꺾였다. 이후 커피 시장에는 '루왁커피'가 '맛있고 비싼 커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박스 기사 참조), 지금은 파나마 등지에서 생산되는 '게이샤' 품종의 커피가 대구에서 주목받고 있다.

유행했던 커피 원두들의 특징 중 하나가 '희소성'이다. 맛도 좋지만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하지만 희소한 품종의 커피라고 해서 그 맛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두커피의 맛은 생두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로스팅과 추출 과정에서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커피 전문가는 "유행했던 커피 원두가 품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장되거나 근거가 없는 것들이 많다"며 "그 이야기에 혹해서 '굳이 비싼 커피'를 사 마시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싼 커피는 이상한 원두만 쓰는가?

올해 동성로에서 가장 많이 늘어난 가게가 '봄봄' '빅다방'과 같이 20온스(약 500㎖)에 달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2천원 안팎의 가격에 파는 곳들이다. '스타벅스'처럼 한 잔에 4천원 안팎의 돈을 내야 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보다 훨씬 싼 가격에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커피 원두의 품질이나 정량을 주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의심이 갈 때도 있다.

하지만 커피 전문가들은 저렴한 가게들의 원두 품질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라노데 커피'의 김준호 대표는 "적당한 품질의 커피 생두를 대량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단위 중량에 따른 원두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며 "이를 로스팅을 통해 어떻게 맛을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는 거지 원두의 품질은 대개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올해 관세청이 발표한 커피 수입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5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1∼9월)까지 원두 등 커피(조제품 제외) 수입 중량은 약 10만2천5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만9천400t)보다 3.2% 늘었다. 이는 1990년 커피 수입에 관한 통계가 기록된 이래 2년 연속 최고 기록이다. 수입 물량이 늘면서 가공 과정에서 볶은 커피 원두는 대량으로 생산됐고 이는 원두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져 2천원 안팎의 아메리카노가 가능한 원인이 됐다. 실제로 대구의 일부 로스터리 숍(커피 원두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커피숍)들은 커피 원두 200g을 1만2천원 안팎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하우스블렌드 225g이 1만4천원 하는 데 비해 저렴하면서 신선도도 상대적으로 좋다.

다만, 정량을 주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다. 한 네티즌이 '빽다방'에서 커피를 다 마신 뒤에 남은 컵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는데 얼음이 절반 이상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이후 "빽다방 커피는 몇 번 빨아 마시고 나면 없다"는 네티즌들의 주장이 있었으며 이를 검증한 블로거도 있었다. 이 블로거는 "스타벅스(345㎖)와 빽다방(500㎖) 아메리카노 풀사이즈 용량을 비교해 보니 얼음 뺀 커피의 양만 쟀을 때는 빽다방이 450㎖, 스타벅스가 320㎖가 나왔고 맛도 빽다방이 좀 더 가볍다는 느낌 이외에는 큰 차이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커피 전문가들에게 '좋은 원두'의 조건을 물어봤을 때 대부분 공통된 의견이 나왔다.

"자신이 사는 동네 근처에 로스팅을 하는 카페가 있다면 그곳에서 볶은 지 2, 3일 정도 지난 원두를 1, 2주일 안에 마시면 그것이 가장 좋은 원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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