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열풍이 대한민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할리우드 발 복고열풍이 세계를 덮쳤다. 1980년대 빅히트작 '빽 투 더 퓨처' 시리즈의 재개봉 소식에 발맞춰 각국의 영화팬들이 열띤 반응을 보내고 있다. 개봉 30주년(1편이 개봉된 1985년 기점)을 맞아 지난 21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뉴질랜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제히 재개봉됐다. 국내에서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극장에서 1, 2편이 팬들과 만나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보다 선명해진 화질과 풍부한 사운드를 갖췄다. 또한 원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모션자막이 삽입돼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재개봉일인 2015년 21일은 '빽 투 더 퓨처' 2편에서 극 중 인물들이 미리 가본 미래의 '그날'이라, 특히 영화의 팬들에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 타이틀의 '빽'이란 글자 역시 지금은 쓰지 않는 표기임에도 80년대 당시를 떠올리며 그대로 반영해 향수를 자극한다.
◆해외 박스오피스 1위, 재개봉작으로선 이례적인 반응
사실 IPTV 등 2차 판권시장의 발달로 과거 히트작의 재개봉이 추진되는 건 흔한 일이다. 잠시 극장에 걸어 눈길을 끈 후 P2P사이트나 IPTV로 보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 경우 극장 재개봉은 이슈 생산을 목적으로 할 뿐 수익을 남기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빽 투 더 퓨처'의 경우는 다르다. 개봉 첫날, 북미 지역에서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던 '마션'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빽 투 더 퓨처' 1, 2, 3편이 차례로 박스오피스 1, 2, 3위에 올라 영화 관계자들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호주에서도 5위권 안에 진입했다. 제아무리 화제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개봉 후 30여 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가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심지어 정상을 차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도 '빽 투 더 퓨처'는 세계 박스오피스를 휩쓸며 개봉 당일에만 54억원을 벌어들였다. 구색을 맞추기위해 극장에 다시 걸어 홍보 효과만 누린 후 2차 판권시장으로 내보내는 여느 재개봉작과 판이하게 다른 행보다. 심지어 이 놀라운 흥행성과에 오히려 개봉관이 늘어날 지경이다.
'빽 투 더 퓨처'의 재개봉과 함께 곳곳에서 펼쳐지는 이벤트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개봉일부터 5일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각국의 '빽 투 더 퓨처' 팬들을 위해 대형 투어 행사 '백 인 더 타임'이 진행됐다. 3편에서 등장했던 신처럼 타임머신이 올라 기찻길을 달리는 체험을 해보고 극 중 인물들이 살았던 힐 밸리 지역을 방문하는 등의 행사다. 각종 체험의 종류에 따라 200~900달러에 육박하는 여러 종류의 티켓이 있는데 300달러 이상의 고가 체험 프로그램은 오픈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진됐다. 그 외 워싱턴에서는 '빽 투 더 퓨처'를 주제로 '웨스트 필름 페스티벌' 전체를 도배했다. 이 자리에 극 중 브라운 박사 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로이드와 주인공 마티의 여자친구 역할을 했던 클라우디아 웰스 등이 등장해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탈리아에서도 대형 박람회를 열고 영화촬영에 쓰였던 의상과 소품 및 세트를 전시했다. 영화 속에서 타임머신으로 쓰였던 자동차를 전시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탑승해 볼 수 있도록 꾸몄다.
국내 팬 사이에서도 열기가 상당하다. 단관 개봉 형태인데도 개봉 이틀 만에 관객 수 1만 명을 넘겼다. 비지상파 영화 채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분위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30년 뒤 미래에 직접 영향 준 수작
'빽 투 더 퓨처'의 재개봉과 동시에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역시 2편에서 묘사한 2015년의 모습이다. 극 중 주인공 마티와 브라운 박사가 미리 가 본 미래가 바로 2015년 10월. 영화 속에서는 떠다니는 스케이트 보드가 나오고 신기만 하면 알아서 신발끈을 조여주는 운동화, 걸치면 자동으로 사이즈를 맞춰주는 재킷이 나와 당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줬다. 화상전화로 회사 상관과 대화하고, 드론이 취재현장으로 나가 인터뷰이의 모습을 담는 장면도 등장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홀로그램 형태의 3D광고판 등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중 30년 전 영화 속에서 그려본 2015년 모습이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특히 인상적이다. 3D 기술은 아직 안경을 쓰고 보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실제로 떠다니는 호버 보드가 거의 완성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에 대한 연구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랐다. 이미 유튜브 등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실험 영상이 올라와 수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동으로 끈 조절이 가능한 신발 역시 실제로 만들어졌다. 나이키 측이 영화 속에서 나온 신발과 같은 형태의 디자인에 자동 끈조임 기능을 탑재한 첫 번째 모델을 내놨으며, '빽 투 더 퓨처'의 주연배우 마이클 J.폭스가 이 신발을 신고 찍은 사진까지 공개돼 화제가 됐다. 내년쯤 시장에 나올 것으로 알려져 향후 제화업계에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나이키 측은 아직 자동 끈조임 기능을 개발하기 전이었던 2011년에 극 중 운동화와 같은 모델을 한정판으로 제작해 판매했으며 당시 106억원에 달하는 수익금을 파킨슨병 연구를 위해 설립한 마이클 J.폭스 재단에 기부했다. 나이키 측은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한 프로젝트가 현실이 됐다'며 '빽 투 더 퓨처' 제작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처럼 '빽 투 더 퓨처'는 그 당시를 살던 젊은이들의 열정을 자극해 미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운동화에 자동 끈 조임 기능을 넣어보자는 생각이나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연구도 '빽 투 더 퓨처'를 본 이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대중문화 산업의 틀을 벗어나 각종 산업에 이 정도로 밀접하게 다가간 예도 흔치 않다.
영화 자체의 매력 역시 팬들을 30여 년간 붙잡아두기에 충분하다. 대체로 SF 장르는 무겁고 진중한 톤이 강하다. 하지만 '빽 투 더 퓨처'는 하이틴물이나 트렌디한 로맨틱코미디처럼 재치있고 경쾌한 느낌으로 만들어져, SF의 팬층에 국한되지 않고 한층 더 폭넓게 대중을 포용할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10대 시절 부모를 만나고 그들의 사랑에 영향을 준다는 1편의 설정은 '참신'을 넘어 '파격'으로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등 제작진은 10대 시절의 친엄마와 이성 간의 관계에 놓인다는 이 시놉시스의 파격성 때문에 투자를 받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개봉되지 못했다.
캐릭터 역시 인상적이었다. 마이클 J.폭스가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 마티는 특히 동시대 젊은이들이 공감할만한 캐릭터였다. 전자기타 연주에 빠져 있고 스케이드보드를 즐기는 10대. 미국의 흔한 고등학생이지만 이 캐릭터가 가진 성장에 대한 열망이나 유치한 허세는 비단 미국 고등학생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귀엽고 잘 생긴 외모에 유머와 재치를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고 마이클 J.폭스를 단번에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줬다. 파킨슨병으로 은퇴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연기한 브라운 박사 역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백발에 괴짜 기질이 다분한 인물로 '빽 투 더 퓨처'라는 영화에 포인트를 찍어주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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