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터널 차량 화재사고, 차 버리고 나온 일가족 5명 "뛰어도 끝이 안 보였다"

입력 2015-10-26 20:20:12

암흑 속 대피 어려워

26일 오후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 상주터널 안에서 사고를 낸 화물트럭이 터널 밖으로 빠져나온 뒤 소방관계자들이 인화물질인 시너통을 확인하고 있다. 이 화재로 터널 안에 있던 운전자 등 20여 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이 사고로 상주터널 하행선 통행이 전면 차단돼 운전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26일 오후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 상주터널 안에서 사고를 낸 화물트럭이 터널 밖으로 빠져나온 뒤 소방관계자들이 인화물질인 시너통을 확인하고 있다. 이 화재로 터널 안에 있던 운전자 등 20여 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이 사고로 상주터널 하행선 통행이 전면 차단돼 운전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26일 화재 폭발사고가 일어난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터널 안에 있었던 운전자'동승자들은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사고는 다행스럽게도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시스템으로는 언제든지 재연 가능하며 터널에서 더 큰 피해가 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지옥의 공포를 경험했다"

"골든타임도 없이 너무 여유가 없었던 무서운 순간이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끔찍한 장면이었어요. 폭탄을 피해 달아나는 심정이었습니다. 안 죽고 살아나온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26일 발생한 상주터널 가스폭발 사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극도의 공포 순간이었다고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터널을 탈출한 이모(63'서울) 씨와 부인 김모(61)씨'처제(57) 등 일가족 5명은 유독가스에 중독돼 상주성모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들은 승용차 1대에 동승했었다.

"무언가 큰 깡통이 굴러다니며 폭발했어요.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버리고 뒤쪽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끔찍한 사고 순간을 이렇게 얘기했다. 이 씨 가족의 승용차는 전소됐다.

이 씨 부인 김 씨는 "사고 순간 불길 치솟는 것만 보일 뿐 암흑이나 다름없었다"며 "순간 대구지하철사고 참사가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다"고 치를 떨었다.

이 씨 처제는 "가족들이 손을 잡고 뛰었는데, 뛰어도 뛰어도 끝이 보이질 않아 정신을 잃을 뻔 했다"고 울먹였다.

이 씨는 "위험물질인 시너를 어떻게 트럭이 그렇게 많이 싣고 다닐 수 있느냐"며 "사고 당시 도로공사 측이 터널 내부 수리를 하고 있었지만 이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보질 못했다"고 발끈했다.

이들은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김모(55) 씨의 생사를 묻기도 했다. 이 씨 가족들에 따르면 "당시 얼굴과 머리 부분이 불에 타 비틀거리는 김 씨가 구조를 요청했는데 이후에 불길이 너무 세지면서 김 씨가 보이질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초대형 참사로 번질 뻔한 사고

이날 사고는 1천600m 길이 터널의 중간지점에서 발생했다. 당시 사고 현장 주변 10여 대의 차량 탑승자들은 불길을 피해 800m 정도를 있는 힘껏 달려 뒤쪽 진입로 뛰어가야만 했다.

소방당국도 "초반 불길이 워낙 거세 진입은 물론,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뒤따르던 차량도 인화 물질을 싣고 있어 뒤차의 제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날 초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다. 사고 현장을 담은 CCTV 영상을 보면 전복된 시너탑재차량 뒤로 대형 탱크로리가 급정거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방당국은 "이 탱크로리 차량은 인화성이 강한 특수물질을 싣고 있었다"며 "만약 시너탑재차량과 추돌했더라면 상상하기 힘든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상주경찰서 한 관계자는 "시너 등 위험물질을 싣고 다니는 대형 차량의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이 바닥이어서 경찰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터널 내에서는 사고가 나면 구조가 쉽지 않은 만큼 운전자들이 무조건 서행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터널 안전, 믿을 수 없다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 연기를 밖으로 빼내는 장치인 제트팬(터널 천장의 엔진모양 구조물)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 때 터널 밖으로 도망가다 질식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부천원미갑)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한국도로공사의 '도로터널 제연용 제트팬 개선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트팬 설치 수량을 현재는 초속 2.5m의 자연풍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터널에 따라 이보다 빠른 자연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해 설치 수량을 재산정 하면 1㎞ 이상 길이 44개 터널에 추가되어야 하는 제트팬은 143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터널에는 모두 464기의 제트팬이 설치돼 있으나 이는 필요용량 607기의 76% 수준이다. 이는 현재 상태로는 화재 때 발생하는 연기의 24%를 제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터널길이 4.6㎞ 죽령터널 제천방향과 영주 방향은 각각 22기의 제트팬이 설치돼 있는데 보고서의 자연풍 조건을 적용하면 11개의 제트팬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김경협 의원은 "터널 화재사고는 매년 10여 건씩 발생하고 있으므로 제연설비를 조속히 보강해야 질식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갑)도 올해 국감에서 "현재 전국에 1㎞ 미만 일반 단터널이 267곳, 1㎞ 이상 장대터널이 72곳 등 국내 터널이 339곳에 이르는 상황에서 최근 6년간 터널 내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해 보니 일반터널 내 교통사고가 262건에 이르렀다"며 "터널 1곳당 사고가 1건씩 일어났으며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1㎞ 이상 장대터널 교통사고는 212건으로 장대터널 한 곳당 3번꼴로 사고가 나고 있는 상황에서 2차 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박신형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상주터널 경우는 사고가 많이 나 몇 년 전 진단을 하고 보고서를 제출했던 곳"이라며 "상주터널 안에서 운전자들이 과속하고 차로 변경을 하는 경우가 잦아 추돌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터널 내 최고속도 표지판을 설치해 과속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명대 권오훈 교수도 "한국도로공사에서 터널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표지판과 사이렌 소리 등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고 있지만 터널 안 사고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고속도로 터널 안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사고가 날 경우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터널 안 사고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터널 중간에 여러 곳의 우회도로 및 가변차로, 응급전화 설치 등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면서 "일부 고속도로 터널은 조도가 낮아 터널 진입 때 운전자들에게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어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명대 정병두 교수도 "국내 고속도로 터널 가운데 도로 선형을 개설할 필요가 있는 곳이 많다"며 "굴곡이 심한 터널은 내부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 화재 등 재난 때에 몹시 위험하다"고 말했다.

성주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김천 신현일기자 hyunil@msnet.co.kr

상주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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