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通] 스포츠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선수

입력 2015-10-24 01:00:08

굽어버린 발가락, 찢어진 손톱…"내가 오르는 곳은 '나 자신'이라는 암벽"

지난 11일 대구시 수성구 대흥동 암벽경기장에서 열린
지난 11일 대구시 수성구 대흥동 암벽경기장에서 열린 '대구국제암벽경기'에서 김자인 선수가 암벽 코스를 오르고 있다. 김 선수는 결승전에서 완등하며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선수대기실에서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해준 김자인 선수.
선수대기실에서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해준 김자인 선수.
김자인 선수 가족. 왼쪽이 부친 김학은 씨. 오른쪽이 모친 이승형 씨.김자인 선수 제공
김자인 선수 가족. 왼쪽이 부친 김학은 씨. 오른쪽이 모친 이승형 씨.김자인 선수 제공

키 153㎝, 체중 41㎏, 암벽화 사이즈 205㎜. 현재 김자인(27'스파이더 코리아) 선수의 신체 조건이다. 이 가녀린 몸에 중력(重力)이 미칠까마는 과학 법칙은 어김없이 그녀에게도 적용된다.

암벽타기 중 리드(lead) 경기는 높이 15m 직벽에 설치된 홀더(holder) 40~60개를 8분에 오르는 경기다. 직벽을 오르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클라이머들에게 90도 각은 고속도로와 같다. 100도 이상 기울어진 곳도 많고 아예 천장을 맨몸으로 날 듯 다녀야 하는 코스도 있다. 이런 불리한 신체 조건으로 김자인은 왜 이런 운동에 뛰어들었을까.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는 데는 오히려 제가 제일 유리해요." 세계챔피언 기록 못지않게 '긍정 에너지'도 금메달감이었다. 지난 11일 국제암벽대회 참가차 대구에 들른 김 선수를 수성구 대흥동 암벽장에서 만나봤다.

◆대구암벽대회 여자 '리드' 부문 우승

인터뷰를 위해 경기장을 찾은 날 마침 여자부 리드 준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경기 전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 시간이 되자 김 선수를 비롯한 20여 명의 선수가 일제히 암벽 앞으로 나왔다. 루트 파인딩은 경기 전 선수들이 코스를 둘러보는 시간을 말한다. 6분 동안 암벽을 탐색하며 방법을 구상하게 된다.

김 선수는 망원경을 들고 나와 난코스인 오버행어 지점을 유심히 관찰했다. 옆에서 슬쩍 세부 전략을 물었다. "일부 선수들은 루트 파인딩 때 코스와 홀더 위치를 완전히 외우기도 하는데 전 그렇게 하지 않고 중요 코스만 유심히 연구하는 편입니다. 홀더 위치를 살핀 후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공략법을 궁리하는 것입니다."

경기에서 김 선수는 역시 날렵했다. 초반에 선수들을 절반 이상 탈락시킨 마(魔)의 7m 구간을 가뿐히 오르고 40번대 홀더로 곧장 올라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14m 루프 구간에서 홀더를 놓치면서 완등을 놓쳤다. 그러나 최고 포인트 등반자가 되어 결승전에 진출했다. 난도를 훨씬 높인 파이널 코스에서 김 선수는 가뿐히 완등하며 여자 '리드' 부문 우승자가 되었다. 팬 서비스로 진행된 고난도 남자 파이널 코스도 가볍게 해치우면서 세계 최강의 실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월한 유전자에 승부 근성까지

김 선수가 처음 홀더를 잡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미 선수생활을 하고 있던 오빠들을 따라나선 자리였다. 중간쯤 올라갔다가 밑을 내려다보곤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일과의 짜릿한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자일과 살짝 비켜갔던 운명은 2년 후 다시 찾아왔다. 부모님(김학은 전 고양시산악연맹 부회장, 이승형 전국여성산악회 부회장)의 권유로 6학년 때부터 오빠들과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산악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김 선수는 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전국대회 우승컵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우월한 유전자 덕이겠지만 김 선수의 승부 근성과 연습량은 그 세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중학교 때 별명은 '647'이었다. "어느 땐가 등반 때 실수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떨어질 때마다 윗몸일으키기를 100개씩 하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그날 전 모두 10번을 떨어졌어요. 연습장 구석에서 스스로 벌을 서기 시작했죠." 그런데 경기장에서는 깜깜하도록 김 선수가 보이지 않자 소동이 벌어졌다. 오빠들과 코치가 한참을 찾아 헤매다 구석에서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김 선수를 발견했다. 645, 646, 647을 외치면서. 그날 김 선수는 1천 개를 채우고서야 오빠들을 따라나섰다.

◆6년 동안 세계대회 20여 회 우승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에서는 김 선수의 적수가 없었다. 오빠들도 가끔씩 아시아 무대에서 결승에 오르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김 선수의 활동 무대는 이미 세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2009년 월드컵 1위를 차지하면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18일 중국 우장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우승을 포함해 모두 20여 회의 국제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제 그에게 '암벽여제' '스파이더 걸' 같은 수식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5척 단신의 김 선수가 월등한 신체조건을 가진 서양 선수들을 제압해 나간 데는 그녀만의 독특한 기술, 훈련법이 한몫했다. "남들은 쉽게 잡을 수 있는 홀더도 저는 도약이나 점프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핸디캡을 넘기 위해 전 '하이 스텝'(high-step)을 많이 써요. 높이의 불리함을 가로를 최대한 넓혀 극복하는 전략이죠. 하이 스텝은 '다리 찢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김 선수가 절벽 같은 긴박한 공간에서 하이 스텝을 구사하면서 오르는 모습은 전율을 자아낼 정도다.

단신의 김 선수를 위로해 주는 건 또 있다. 긴 손가락이다. 키에 비해 손가락은 거의 일반인 크기와 맞먹는다. 긴 손가락은 암벽에서 무척 요긴하다. 지우개만 한 홀더에 전신을 지탱하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이 모든 기술과 테크닉을 떠나 오늘의 김 선수를 있게 한 가장 큰 동력은 무엇보다도 훈련법이다. 푸시업은 세기가 지겨울 정도고 턱걸이도 30~40개는 거뜬하다. 웬만한 성인 남성을 압도하는 완력이지만 파워를 위해 복근, 코어근육을 강화하는 걸 잊지 않는다. "우리 근육을 장조림 근육이라고 해요. 어깨와 팔이 세세한 잔 근육으로 가득 차 있어요. 순간 파워보다 지구력, 근력을 나눠 쓰기 때문이죠. 굵은 철근보다 철사로 꼰 와이어가 더 강한 이치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IFSC 선수위원으로 선출 "암벽 대중화"

김 선수는 작년에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IFS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지금 국제클라이밍은 거의 유럽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선수들이 많고 대회가 그쪽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김 선수는 앞으로 IFSC에서 아시아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중임을 맡게 된다. 국제무대는 물론 국내에서도 암벽 대중화를 위해 활동할 날개를 단 셈이다.

얼마 전에 TV에서 김 선수의 발가락이 공개된 적이 있다. 붉게 부어오른 발등, 굽어 버린 발가락. 경기를 위해 암벽화에 발을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손가락도 흉하긴 마찬가지다. 손톱은 갈라져 찢어지고 지문은 달아 매끈하다. 공항 입출국 때마다 애를 먹는다고 한다. 모두 자신과의 싸움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이다.

그는 이런 몸으로 중력과 싸우고 인간 한계에 도전하며 세계 최고로 우뚝 섰다. 세상의 무게를 손끝으로 지탱하며 그녀가 오른 곳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암벽 타다 인연 맺은 부모님…두 오빠도 아시아대회 두각

◆'산악 패밀리' 김자인 선수 가족

"엄마, 아빠는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하셨고 오빠 두 분도 일찍 암벽을 시작해 선수가 되었어요. 제가 챔피언으로 오른 데는 이런 우월한 가족력(?)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김 선수를 만나 산악 패밀리로서 집안 내력을 들어보았다.

-3남매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다는데.

▶큰 오빠 '자하'는 자일과 하켄(haken'바위에 박는 큰 못)에서 작은오빠 '자비'는 자일과 카라비(carabiner'등산 고리)에서 제 이름은 자일과 인수봉에서 따왔대요. 인수봉이 클라이머들의 성지니까 그럴듯해 보여요.

-어머니가 한국 1호 여성 클라이머, 1급 심판이라는데.

▶엄마가 처음부터 심판을 하신 건 아니고 저희 삼 남매를 지도하면서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하면서 전문가가 되신 거죠. 저희들이 처음 시작할 땐 규칙도 모르고 국제 룰, 경기 방식도 이해를 잘 못했어요. 엄마가 하나씩 배워가면서 저희를 지도하신 거죠.

-엄마, 아빠의 산악 내공은?

▶두 분 다 전문 산악인은 아니셨고 그냥 암벽, 등산 동호인 수준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저희 남매를 산으로 데리고 다녔으니까 일찍 클라이밍에 눈을 뜨게 된 거죠. 아빠는 전 고양시산악연맹 부회장이고 엄마는 전국여성산악회 부회장으로 계십니다. 엄마가 급(級)이 더 높아요.(웃음)

-오빠 두 분도 선수로 꽤 유명한데.

▶큰오빠는 아시아선수권 우승까지 했어요. 지금은 선수활동은 안 하고 제 코치를 하며 서울 신사동에서 암벽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작은오빠는 저와 선수 생활을 같이하고 있어요. 아시아대회서 결승 진출도 했었고 국내대회에선 우승을 많이 했죠. 11일 대구경기에서도 저희 남매가 나란히 우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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