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통신] 여의도의 대구 음식

입력 2015-10-23 01:00:09

여의도 국회를 나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게 식당이다. 국회에 근무하는 사무처 직원, 국회의원실 보좌진, 언론 종사자, 여기에다 출장 온 각 부처 공무원, 민원인들까지 더하면 국회 울타리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 수만 해도 수천 명이 넘으니, 식당 입지 조건으론 여의도만한 곳이 없다.

회식도 잦고, 모임도 많아 손님 끊길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임차료가 비싸고 고객 만족을 실현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 여의도 식당들의 숙명이다.

여의도의 터줏대감 식당들엔 공통점이 있다. 고객 편의와 친절함을 무기로 한 번 찾은 손님은 단골로 만든다. 기존 고객들에게는 더없는 서비스로 다단계식 고객 확충에 나선다. 그래도 최고의 비결은 맛이다. 국회 종사자들 간 네트워크가 거미줄 같아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삽시간에 소문이 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다.

식당들은 다양한 메뉴로 고객을 유치한다. 중식, 한식, 일식, 패스트푸드를 기본으로 하지만 식당마다 독특한 대표 메뉴가 있다. 가령 여의도에만 분점이 2곳이나 되는 A일식집은 회를 다양한 해초에 싸 먹도록 한다. 얹어 먹는 젓갈이 독특하다. B한우집은 썰어놓은 고기를 숯불에 굽는 대신 두꺼운 무쇠솥 같은 데 큰 덩어리의 고기를 올려놓고 갈기갈기 찢어주는 게 매력이다. C한정식은 정어리를 된장에 섞어 끓인 장을 상추에 싸먹도록 하는데 이게 별미다.

지역 고유의 음식으로 입맛을 자극하는 곳도 많다. 음식으로 유명한 전라도는 식당 간판에 '나주'니 '호남' 문구를 넣어 호남 음식점임을 알린다. 찬 녹차물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와 함께 먹는 게 처음엔 낯설었는데, 여의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한 끼 식사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국회 앞에만 수백 개의 식당이 있고, 전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즐비하지만 유독 맛보지 못한 게 대구 음식이다. 돼지국밥도, 따로국밥도 여의도에선 여태 맛보지 못했다. 동인동 찜갈비를 하던 식당은 문을 닫았고, 소주 한잔하며 곁들였던 막창도 존재감 제로다. 나주곰탕은 있어도 현풍할매곰탕은 없는 여의도. 한 대구 출신 보좌관은 "맵고 짠 것으로 대표되는 대구 음식은 까다로운 여의도 입맛을 못 맞췄고, 설 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여의도에 발 못 붙인 대구 음식을 보면서, 여의도 정치판에서 제대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주변 힘겨루기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대구 정치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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