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방문이 달갑잖은 어느 젊은 며느리가 잔머리를 굴렸다. 시어머니가 쉽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외래어로 된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로 이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로는 시어머니가 시누이를 둘씩이나 앞세우고 찾아오는 바람에 더 큰 낭패(?)를 봤다는 우스갯소리이다.
최근에는 더 기막힌 얘기가 나돌았다. 아들 집에 가기 위해 서울역에 내린 시골 할머니가 택시를 탔는데 몇 번이고 들은 아파트 이름이 입에서 뱅뱅 돌기만 했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을 지나 '니미시벌 아파트'로 가자"고 했는데, 사려 깊은 택시 기사가 목적지에 제대로 내려줬다. 그곳은 바로 '예술의 전당'을 지나서 위치한 '리젠시빌 아파트'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요즘 아파트 이름이 너무도 난삽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브랜드의 고급화'라는 명분 아래, 건설사와 입주민들의 상업주의와 허위의식이 합세한 가운데 별의별 이름이 다 횡행하고 있다. 영어인지 프랑스어인지도 모를 외래어 명칭이 전염병처럼 창궐해 유학을 갔다 온 젊은 사람들도 한번 들어서는 기억하기가 어려운 판이다.
힐스테이트, 더샵, 센트레빌, 위브더제니스, 보네르카운티, 베르디움, 스위첸, 노빌리티, 에버빌, 웰러스, 리슈빌…. 그야말로 국적 불명 아파트 이름의 춘추전국시대이다. 삼성래미안, 롯데캐슬, 태왕아너스 정도는 고전에 불과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우리말 아파트 이름은 '꿈에그린'과 '하늘채' 정도이다. 영어와 한글을 조합한 'e편한세상'과 '솔파크', 외래어 같은 우리말인 '푸르지오'와 '미소지움'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할 지경이다.
근본도 모를 어려운 이름을 쓴 아파트 이름일수록 고급 아파트이고 값이 비싸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그런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이라야 품격이 높아진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롯데 '낙천대'를 롯데 '캐슬'로 바꿔달라고 아우성이고, 대구 인근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도 아파트 이름과 브랜드 변경을 둘러싸고 입주민과 건설사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지고 있다.
한글 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우리 문화에서 비롯된 한류가 지구촌을 강타하는 시대, 외국어를 써야 고급이고 우리말을 쓰면 값이 떨어지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의 품격은 올라갈까 내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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