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기행] 물의 계곡 '트렐레조'

입력 2015-10-20 01:00:05

프랑스~스위스 넘나드는 코스…현지 트레커들에 인기

트렐레조 계곡 상단의 늪지에 핀 야생화 너머로 몽블랑 산군의 아르장띠에르 빙하가 흐르고 있다.
트렐레조 계곡 상단의 늪지에 핀 야생화 너머로 몽블랑 산군의 아르장띠에르 빙하가 흐르고 있다.
트렐레조 계곡 상단 바위면은 빙하에 깎인 흔적들이 선명하다.
트렐레조 계곡 상단 바위면은 빙하에 깎인 흔적들이 선명하다.
물의 계곡 지도
물의 계곡 지도

#당일 산행·1박 2일 코스 입맛대로

#전나무 숲·계곡·바위 '자연 종합세트'

#야생국화 사이 작은 호수 숨은 절경

몽블랑 산군의 북측 끄트머리에는 동서로 길게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선이 가로놓여 있다. 이 국경선을 따라 서쪽으로 몽떼 고개를 넘는 계곡 아래에는 자그마한 산간마을 르 뷔에(le Buet'1,303m)와 발로신(Vallorcine'1,260m)이 있다. 그 계곡 건너편에 일반 트레커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 하나 있는데, '물의 계곡'이라는 뜻의 트렐레조 계곡(Val de Tre les Eaux)이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 국경 고개인 꼬르보 고개(Col des Corbeaux'2,602m)를 넘어 스위스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원점 회귀형 산행코스로서 현지인들에게는 인기가 있다. 르 뷔에 마을에서 시작해 물의 계곡을 올라 떼라스 고개(Col de la Terrasse'2,648m)를 넘어 내려오는 하루 산행도 괜찮고, 떼라스 고개로 내려오지 않고 에모송 댐으로 내려가 산록을 끼고 로리아 산장으로 가 하룻밤 자고 내려와도 좋다.

아담한 산골마을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르 뷔에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샤모니 쪽과는 다르게 돌로 지은 샬레들이 눈에 띄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전나무 숲에 들어선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숲에서 벗어나 베라르(Berard) 계곡 초입에 이른다. 수십m 높이의 폭포로 떨어지는 세찬 물줄기가 시원하게 땀을 식혀준다. 마치 설악산의 어느 계곡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계속 따라 오른다. 8월 말이면 숲길 좌우로 한창 영글기 시작하는 새까만 블루베리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30분쯤 후에 닿는 나무다리에서 계곡을 건너면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방향을 급회전하여 숲길로 이어진다. 숲 속에는 오두막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차츰 낮아지는 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거슬러 30분 오르면 급경사의 바위사면이 나타난다. 오른편에 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는 100m 높이의 가파르고 미끄러운 바위사면을 오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작은 야생화 언덕이 나타나고 이후 계곡 오른쪽 사면을 오르내린다. 좀 더 오르면 길이 평탄해지고 좌우로 풀밭이 펼쳐진다. 차츰 고도를 높여 계곡 깊숙이 들어서면 8월 말 한여름에도 몽 뷔에 북면에 잔설이 있다. 다시 급사면이 이어지다가 이제 '물의 계곡' 상단부다. 큰 바위 언덕의 바위표면이 빙하에 씻겨 매끈매끈하다. 여기까지 3시간 걸린다. 이 주변이 물의 계곡에서 풍경이 가장 좋아 필자는 몇 번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기도 했다. 저 멀리 아르장띠에르와 뚜르 빙하, 그리고 주변 침봉들을 보며 알프스의 적막에 싸여 호젓하게 밤을 보내기 좋은 장소다.

이어 꼬르보 고개로 오르면 한동안 돌길이 이어진다. 여유롭게 고개를 내려오는 부부 트레커의 모습이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처럼 보기 좋다. 한동안 모레인 돌밭 길을 오른다. 해발 2,000m 이상이라 제법 쌀쌀해 재킷을 입고 바위지대에 형성된 작은 호수를 둘러본다. 호수 주변은 온통 돌밭이지만 바람에 실려 와 뿌리내린 야생 국화들이 풍경의 삭막함을 덜어준다.

발길을 돌려 너덜바위 사면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다 얼마간 오르막을 올라 고갯마루에 선다. 국경인 꼬르보 고개이다. 이제부터 스위스 땅이다. 고개 아래에 공룡 발자국이 있는데, 한국의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작아 떼라스 고개로 발길을 돌린다. 북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에모송 댐이며 떼라스 고개는 오른편이다. 너덜 바위지대로 난 돌길을 걸어가면 또 다른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 끄트머리의 바위 아래 아늑한 지점에 몇몇 트레커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팔을 흔들며 반기는 그들에게 답례하고 호수를 반 바퀴 돌아본다. 짙은 구름 사이에 뻥 뚫린 하늘이 호수에 담겨 있다. 잡석이 쌓여 있는 삭막하고 황량한 주변 풍경에 대비되는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이다.

돌길을 걸어 떼라스 고개 정상에 선다. 이정표에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는 룽다 깃발 아래로 한동안 보이지 않던 몽블랑 산군의 북동쪽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뚜르 빙하와 아르장띠에르 빙하가 지척이고 빙하 주변의 침봉들이 한층 가깝게 보인다. 대부분 올라본 봉우리들이지만 올라야 할 등반선은 아직도 무한정 많아 보인다. 좌측 저 멀리 아이거가 있는 베르너 오버란트 산군도 보인다. 비록 흐릿하지만 이곳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베르너 산군에는 오르지 못한 봉우리가 더 많다. 이곳 알프스만 하더라도 평생을 올라도 못다 오를 지역이라 이제껏 알프스가 좁다고 불평한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제 긴긴 하산길이 남아 있다. 로리아 산장으로 가기 위해선 떼라스 고개에서 곧바로 동쪽 급사면으로 내려가야 한다. 30m의 첫 구간은 마치 등반을 하듯 가파른 바위사면을 내려가야 하는데, 간혹 위에서 돌이 굴러 내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수백m 아래 완만한 자갈사면을 길게 횡단하고 나서야 길이 평탄해진다. 차츰 고도를 내리면 풀밭이 이어지고 좀 더 하산하면 키 작은 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알펜로제 군락이라, 꽃들이 피어나는 7월 초에 찾으면 붉은 고산화원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곧이어 함석지붕으로 된 막사가 줄지어 있는 로리아 산장이다. 대부분 소를 키우는 우리로 쓰이며 트레커를 위한 산장은 위쪽에 있다. 산장 앞 나무벤치에는 몇몇 트레커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쉬고 있다. 한겨울에 많은 눈을 이고 있을 때와는 달리 목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계곡 건너편, 알피니스트들이 찾는 몽블랑 산군의 산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어 전나무 숲을 지나 한 시간 후 뷔에 마을로 하산한다.

[tip]

야생 허브가 많은 몽떼 고개 너머에 있는 뷔에 마을은 샤모니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데, 산악열차인 몽블랑 익스프레스를 이용하면 약 20분 걸린다. 샤모니 계곡을 오르내리는 몽블랑 익스프레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샤모니 계곡의 각종 숙박업소에 비치된 티켓(carte d' Hote)을 소지하면 무료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물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 꼬르보 고개를 넘어 르 뷔에로 내려오는 당일 산행도 가능하지만 에모송 댐으로 하산해 몽블랑 산군을 바라보며 산록을 가로질러 로리아 산장에서 1박 후 내려오는 것도 좋다. 물의 계곡 상부 호수 주변은 각종 야생화와 빙하에 깎인 바위, 늪지 등이 잘 어울려 있어 사진촬영에 좋은 장소이기에 이곳에서 하룻밤 야영하는 것도 좋다.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뜨니 여름철에도 보온의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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