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에 많이 불렀던 동요 '리 자로 끝나는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그 노래의 가락과 예쁜 우리말 가사에 매료되어 그 노래를 놀이에 활용하였다. 이를테면 "아, 아, 아 자로 시작하는 말~" 하고 선창을 하면 "아버지, 아리랑, 아침…" 말이 막힐 때까지 돌리는 놀이다. 막힌 친구가 술래가 되어 또 다른 문제를 내고.
요즘에 와서 가끔 그 말놀이를 나 혼자서 해 본다. 머리가 좀 말랑말랑해질까 싶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싶기도 해서다. 오늘은 '따'로 시작하는 말을 생각해 보니 따오기, 따발총, 따지기 등이 떠오른다. 이 중에 '따지기'를 메뉴로 곱씹어 본다.
며칠 전, 모임에서 건배 제의를 받았다. 너무 오랜만이라 마뜩한 건배사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다 생각해낸 것이 '삐, 빠, 따'였다. 잘 알다시피 '삐치지 말고, 빠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 언뜻 따져 보니 순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따지다가, 삐쳐서, 빠지는 게 일반적인 순서이므로 '따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빠지지 말자'로 말의 순서를 바꾸어 "따, 삐, 빠!"로 건배 제의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그건데 괜스레 따지느라 쓸데없는 머리를 쓴 셈이다.
미국에서 건너온 이야기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중년 남성이 묘령의 딸과 함께 사는 중년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그 남성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의붓딸이 사이가 나쁠까 봐 걱정을 했다. 뜻밖에 너무나 사이가 좋아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 남성은 촌수 따지기의 고민에 빠져들었다. '의붓딸도 분명히 딸인데 아버지와 결혼을 하였으니 딸인 동시에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의 딸과 결혼을 하였으니 나의 사위가 되고, 아내는 어머니(의붓딸)의 어머니이므로 나의 할머니가 된다.'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를 따지다가 이 남성은 결국 노이로제에 걸려 자살을 하였다고 한다.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분석하고 이론과 논리를 따지다 보면 파멸을 부를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의 문화 속에 서양의 분석주의가 침투하면서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만만치 않다. 요즘 우리들은 너나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도 될 사소한 문제를 놓고 너무 깊이 따지는 건 아닐까.
가까운 동네 숲을 거닐다가 얼기설기 어우러져 서로 다른 색깔로 핀 풀꽃들을 마주한다. 네 영역, 내 영역도 없고 그중에 좀 건방진 녀석은 슬쩍 기대어 커도 서로 옴니암니 따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봄부터 지금까지 꽃피우고 열매 맺고 겨울 채비하면서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풀꽃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은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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