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책!] 에로스의 종말

입력 2015-10-17 01:00:05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피로사회'로 스스로 소진하는 현대인을 비판적으로 조명했고, '투명사회'로 투명성이 신뢰를 높이기보다는 감시를 강화한다고 지적했으며, '심리정치'로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은밀한 통치술을 파헤쳤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새 책이다. 한병철이 2013년 독일에서 펴낸 'Agonie des Eros'(아고니 데스 에로스)의 번역판이다. 책은 오늘날 진정한 사랑(에로스)이 위기에 처한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늘 그랬듯, 한병철의 분석은 흥미로우면서도 신랄하다.

한병철이 말하는 사랑은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이고, 타자를 발견하기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도 있는 용기를 수반한다. 쉽게 말하면 '이타'라고도 볼 수 있다. 한병철은 지금 우리가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피로사회에서도 언급된 개념인 성과 원리가 지배하는 현대의 세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단순한 성애로 변질되고 만다는 것.

한병철은 베스트셀러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예로 든다. 여주인공은 파트너가 자신과의 관계를 '정해진 근무 시간, 명료하게 정의된 업무, 성과의 질을 보장해주는 철저한 방법을 갖춘 일자리'처럼 여기는 것에 어리둥절해한다. 소설 속 사도마조히즘은 성행위 중 기분전환용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파트너는 자신(자아)의 나르시시즘적 만족만 추구할 뿐, 상대방 여주인공(타자)을 발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가 주는 신비는 이제 진부한 소비재에 불과하다. 생각해보자. 이들의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책 서문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이다"고 밝혔다. 110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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