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 현장기록 119] 소방서 불문율

입력 2015-10-08 01:00:05

소방서에는 불문율이 있다. 팀끼리 어디 놀러 간다고 하면 그 장소에 관련된 구조출동이 꼭 일어난다. 포항 놀러 간다고 하니 바로 물과 관련된 구조출동 때문에 고생했었으니까. 이번에는 지리산을 가기로 했는데, 설마…?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저기서 출근자들의 인사 소리와 함께 야간 교대팀의 출근이 이어졌다. 교대점검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행정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김 반장: "막내야, 내일 산에 갈 준비해 왔냐?"

막내: "당연하지요, 선배님은 준비물 다 챙겨 오셨습니까?"

김 반장: "당연하지. 얼마나 기다리던 팀 여행이냐!"

오늘은 야간근무 이틀째. 오늘 근무가 끝나면 우리 팀은 지리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대기실에서 각자의 준비물을 꼼꼼히 확인하던 중.

막내: "선배님, 저번에 포항 놀러 갈 때 수난 사고 걸렸었는데, 우리 내일 산에 간다고 산악 사고 걸리는 건 아니겠지예?"

김 반장: "그러게 말이다. 그때 드라이(슈트) 입고 들어가서 몇 시간을 헤맸었는지…. 에휴!"

그렇게 기쁘지 않은 회상을 하며 다시 한 번 내일 놀러 갈 생각에 부풀어 있던 중이었다. 구조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팔공산 동봉과 서봉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김 반장: "에잇, 막내 니가 아까 그 소리 해가 산악 걸릿다 아이가."

구조팀장: "어여 가자. 비도 오고 추운데 요구조자 우의도 챙기고 보온장비 단디 챙겨 가야 된데이."

팔공산까진 1시간 남짓한 거리. 얼마 전에 방영된 방송의 힘 때문인지 길을 비켜주는 양심운전자들이 많아져 20~30분 가까이 출동시간이 단축되었다. 그렇게 20분 남짓해서 도착한 산 하부 주차장. 구조공작차에서 산악용 차량으로 갈아탄 후 요구조자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근 주차장까지 신속하게 이동한다. 이동 도중 신고자와 연락해 위치를 확인하는 것 또한 중요한 작업이다. 요구조자는 "동화사에서 올라오는 길쯤인 것 같은데 갈림길이 많아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동봉이랑 서봉 중간 같기도 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인데 밧줄이랑 비석 같은 돌이 많아요. (치치지직)여…보……세……요……(뚜뚜뚜뚜)."

막내: "팀장님 전화 끊겼는데요…. 요구조자 전화기 배터리가 없나 봐요."

구조팀장: 김 반장, 정 반장 봐봐라. 밧줄이랑 비석이라 캤다 아이가. 카면 아마도 지도 이 지점에서 요 지점 사이일끼라. 후딱 장비 챙기가 가자. 랜턴이랑 조명탄 무전기 챙겼는지 꼭 확인하고."

팀장님의 또 한 번의 지시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조자와의 연락두절은 우리를 더욱더 힘들게 한다. 각종 통신장비와 조명, 보온장비는 요구조자는 물론 구조작업을 벌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건 마찬가지이기에 다시 한 번 더 장비를 확인한다. 게다가 요구조자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일대를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다.

팀장: "할 수 없지. 2개조로 나눠서 찾아보자."

애타게 소리쳐 댔지만 요구조자는 보이지 않고 우리들의 외침이 외로운 메아리처럼 돌아오고만 있었다. 그렇게 팔공산 일대를 헤매기를 1시간. 요구조자가 떨고 있을 생각에 대원들의 마음은 다급, 아니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요구조자의 생명 유지에 위협적일 수 있다. 그 순간!

구조1조: "찾았습니다. ○○방향 표지판 ○○번 인근입니다. 조명탄으로 표시하겠습니다."

김 반장: "상황실, 여기 ○○구조대입니다. 요구조자 발견. 응급처치 후 하산하겠습니다."

구조된 사람은 "추워 죽겠어요"라며 덜덜 떨고 있었다. 김 반장은 요구조자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담요와 따뜻한 물 한 잔을 준비시켰다. 다리를 삔 듯해 응급처치를 한 뒤 산악 이송용 들것에 요구조자를 고정해 내려왔다.

요구조자: "저 때문에…죄송합니다. 길을 찾으려고 헤매다가 결국…. 죄송합니다…."

팀장: "그래도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네요. 다음부터는 표지판 보면서 다니세요. 길 찾기도 편하고 신고하면 저희가 빨리 찾을 수도 있거든요."

40여 분간 하산해 구급차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삐~뽀~삐~뽀~'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병원으로 떠난 후 구조대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구조 완료까지 5시간. 신고자가 두려움과 추위에 떨어야 했던 시간은 그 5시간보다 많았으리라. 위치만 알았어도, 배터리만 있었어도 조금 더 빨리 도움을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기도 전 무전기에서 우릴 찾는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상황실: "○○구조대, □□구 △△지역에 구조출동 있습니다. 신속히 출동 바랍니다."

구조팀장: "상황 송신 바랍니다. 김 반장 주소 확인하고, 막내는 전화해서 상황 확인해 봐라. 이 반장은 상황실 연결해서 정확한 정보 받고."

'왜에엥~ 삐용삐용~' 또 다른 구조요청.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가슴을 불태워 구하리라. 시민들이 안전한 그날까지 희망의 사이렌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우린 오늘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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