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식겁(食怯)했을 것이다.
일설에는 12명 대구 국회의원 중 10명이나 11명이 물갈이된다고 했고, '위'에서 청와대의 실세인 누구누구를, 대구 어느 어느 지역구에 꼭 찍어서 내려 보낼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끊이질 않았으니 온전한 정신이었겠나. 미루어 짐작이 간다. 대구에서는 대통령 이름 석 자만 뒤에 있어도 몰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소문 속의 주인공들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박근혜 키드'들이 '유승민 키드'가 있는 동네를 점령하기 위해 내려올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으니 말이다. 물갈이라는 점잖은 표현을 넘어 '학살'이라는 단어까지 정치권의 호사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려 '패닉' 상황에 빠졌다는 것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 중 몇몇은 4년 전 그런 흐름 속에 '줄' 타고 내려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한 곳에 고이 내려앉은 것도 아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날아다니는 밀림의 왕자 타잔처럼 이 동네 저 동네를 옮겨 다니며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 지역구를 바꾸기까지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을 터이다.
그나마 청와대가 출마설이 돌던 4인방의 불출마를 '친절하게' 확인해 줬으니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은 급한 불은 끈 셈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제2, 제3의 4인방들이 무슨 줄을 타고 내려올지는 알 길이 없다.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공천이 확정될 때까지는 경계를 조금도 늦출 수가 없다. 대구 국회의원들에게는 어릴 때 불조심 포스터에 단골로 들어가던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구호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어디든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빗자루를 세워도 당선된다는 곳이 대구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 때 그런 현상이 가장 심했다. 그 수혜자가 지금 대구 국회의원들 가운데 적지 않다. 당시에도 유권자들은 고려의 대상에 넣지도 않은 이런 행태를 두고 여론은 들끓었다. "TK 유권자를 졸로 본다"며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공천자 명단이 나오자 상황은 끝이었다. 투표함은 열어보나마나였다. 그러니 대구 국회의원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구에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무얼까를 생각해 본다. 유권자들의 민심? 물론 중요하다. 다른 지역 같으면 당연히 당락을 가르는 제일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대구는 아니다. 열심히 갈고닦아도 누군가가 낙하산 타고 내려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선거운동을 잘 이끌고 갈 수 있는 재력? 과거 같으면 떨어질 사람도 붙게 할 위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선관위에 신고하는 법정선거비용 이외 적당량의 '총알'은 필요하다. 하지만 괜히 돈 자랑하다가는 쇠고랑 차기 십상이다. 결론은 '줄'과 '빽'이다. 표를 찍어준 유권자보다 공천을 준 이를 더 받들 수밖에 없다.
선거철이 또 돌아왔나 보다. 출마 예상자들은 하나같이 서울만 바라본다. 19대 총선 때 벌어졌던 현상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다시 '낙하산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고 한다. TK가 전략지역이라느니 우선추천 대상에 든다느니, 당사자는 빼놓은 채 자기들끼리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TK는 이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뒷전이다. 공천만 받아오면 찍어줬으니까 대접이 나아질 리 없다. 우리들이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청와대 4인방 투입설은 일단 숙졌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으로 볼 때 대구 상공 곳곳에 또 다른 낙하산이 펼쳐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하는 대구 국회의원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만 하다. 우리 동네 일인데 남의 동네 일처럼 구경만 해야 하는 우리 처지도 그리 다르지 않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