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뇌를 아주 멋지게 표현한 말이다. 오늘날 뇌에 대한 의학계의 관심과 열정은 대단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뇌 과학 책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뇌 과학은 복잡성 때문에 일반인뿐만 아니라 의사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그래서 신비로운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는 과학계에 남은 마지막 '블루오션'이라고도 한다.
뇌의 기질적 질환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신경과 의사들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가 올리버 색스다. 그는 '의학계의 시인'으로 불릴 만큼 책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줬다. 그는 환자에 대한 깊은 사랑과 통찰을 바탕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경과 질환들을 흥미롭고도 다양한 임상 사례를 활용해 책으로 썼다.
그가 한 달여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올 2월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보내 자신이 이전에 치료했던 암이 다시 재발했고, 전이까지 돼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됐음을 고백했다.
'한 달 전,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주 전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한 특혜이자 모험이었다고 느낍니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한 후, 책장에 꽂혀 있던 그의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다시 뽑아들고 그의 명복을 잠시 빌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희귀성 신경장애는 시각 인식과 음색 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투렛 증후군, 자폐증 등이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그 환자들을 저런 병명으로 부르지 않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이야기는 뇌의 특정 부위의 문제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시각 인식 불능증인 어느 음악교사의 이야기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모자를 찾지만, 모자 대신 옆에 앉은 아내의 머리를 집어든 이야기를 소개한다.
TV 프로그램에서 올리버 색스의 책을 소개하던 어느 정신과 전문의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솔직히 질투가 났습니다. 실제로 바쁘게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성별, 이름, 진단명, 처방 정도만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사람 그 자체를 보더라고요. 그 환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환자를 질병으로 보지 말라는 건 의대생 때부터 들은 얘기다. 환자는 병의 총합체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이다. 하지만 때로 의사들은 환자를 병명으로 부르고 인식하고 대하기도 한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도 올리버 색스의 책과 그의 말들을 떠올리며 환자를 질병 자체가 아닌, 질병을 가진 한 인간으로 대하려는 마음가짐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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